남북합작 통일문배酒 빚는다 - 북한서 기술제휴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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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잔의 술이 과연 응어리진 분단의 비극과 47년에 걸친 망향의 정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문배주양조원(대표 李基春)이 북한 당국의 제의로 남북이 협력해'통일 문배주'를 만들고 이를'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키우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李사장은“북한 평양소재 조선곡산(대표 崔선규)이 지난 1월14일 북한과 중개무역을 하는 李모씨를 통해 기술제휴 요청서를 보냈으며 통일원.안기부.문화재관리국과의 협의아래 이를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북한측은 기술제휴요청서와 함께 북한에서 자체로 시험제작한'문배술'을 전달했으며 최근 3월초에는 중개상 李씨를 통해 대동강변의 강서약수 한병을 선물로 전달하는등 이번 기술제휴를 간절히 희망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판매 민속주이자 중요무형문화재 36호(86년 지정)인 문배주의 뿌리는 원래 평양.李사장의 부친인 이경찬(李景燦.93년 타계)옹이 1940년 평양에서 찰수수와 메조를 발효시켜 증류하는 집안 전통기법을 현대화해 생산한 것이

시초다.당시 평양 인근 감흥리의 평천(平泉)양조장에서 생산된 이 술은 순식간에 북한 전역에 최고급 술로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과거 북한의 연형묵(延亨默)총리가 서울방문 당시'문배주'를 찾았던 것이 이같은 맥락 때문이다.

그런데 6.25당시 李옹은 서울로 월남하면서 문배주는'남한의 몫'이 됐고 북한에선 제조기법을 전수받지 못해 생산이 사실상 중단됐다.

李사장은“최선규씨가 보낸 편지에 양조장에서 일하며 어린 나를 본 적이 있고 또 실제로 시험용 문배술을 보내왔다는 점으로 볼 때,아마도 과거 부친의 양조장에서 일했을 법한 崔씨가 중심이 돼 자체적으로 생산을 추진하다가 기술력 부족을

절감해 나에게 요청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 보내온 문배주는 맛은 비슷했지만'로카'로 불리는 필터작업및 증류과정이 원시적이어서 이물질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남한의 문배술 또한 대동강물과 북한의 찰수수(현재는 중국산 이용)를 이용해야 제맛이 나기에 약점은 있다는

것이 李사장의 설명.

그러나 이번 북한과의 합작과정에서 북한에 단순히 제조비법만을 알려주기보다 李사장이 경영을 맡아 현대식 생산공장을 세워 세계적 술로 키운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李사장은 조만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1차접촉을 가진 뒤 올해

중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며“이로써 진짜 원조 문배주를 돌아가신 선친 묘소에 올리는 나의 마지막 소망도 해결될 것같다”고 기뻐했다. 〈이효준 기자〉

<사진설명>

이것이 북한 문배주

북한으로부터 문배주 기술제휴 요청을 받은 문배주 양조원 이기춘사장이 북한이 보내온 시험용 문배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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