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2.구룡과 내각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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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종필 노사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주름진 입가에선 곧 폭소라도 터질 듯하다.신한국방 구룡중 잠룡 홍구진인과 맹룡 한동거사 두사람이 자신의 독문무공인 내각공을 익히자고 주장한 사실이 그를 유쾌하게 한 것이다.게다가 무림지존 공삼거사가 어

느 무림원로의 내각공 연마 건의를 경청했다는 얘기는 그를 아예 흥분시킬 정도였다.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 대중검자에게 조금의 이익도 주지 않겠다며 공삼거사가 신한국방 내에서 내각공 수련을 엄금한게 엊그제 일이 아니었던가.

“자민단 고수들은 당분간 내각공 연마를 중단하시오.”

사흘전 종필노사가 수하들에게 내린 지시의 의도는 분명했다.자민단의 내각공 수련이 너무 깊으면 이제 막 내각공을 익히려는 신한국방이나 새국민회의 고수들이 연무(鍊武)를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이제까지 목청껏 내각공의 위력

을 강조해 온 그였다.그 길만이 무림지존의 독주를 막는다는게 명분이었다.

이는 곧 신한국방과 새국민회라는 두 거대조직 사이에서 종필노사가 최대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도 했다.

비록 하루만에 공삼이 방내 내각공 수련불가를 재천명했다지만 무림청문회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 내각공 수련열기가 무림 전체에 퍼질 것이다.궁지에 몰린 공삼이나 대중검자 둘 중 어느 한쪽은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밖에 없으리라.

평생을 무림맹 2인자로 지내온 자신의 대표무공인 유신공을 버리고 새로 연마한 내각공의 위력에 스스로도 감탄이 나오는 종필노사였다.잘만하면 무림 최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목련꽃 지는 4월이면 모든 것이 끝나 있으리라.”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강태공의 여유,종필노사의 미소는 바로 그것이었다.

구룡이 출사표를 던지다

닷새전 구룡쟁패의 첫 포문을 연 것은 유룡(幼龍) 인제거사였다.그는

무림판관 회창객에게'세대교체공'을 펼쳐냈다.신한국방 방주인 무림판관

회창객은 그의 공격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보고만 있다가 가볍게

판관필을 휘둘렀다.

“아직은 때가 이르네.지금은 자네와 드잡이질 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야.”그의 공격을 흩어버리며 돌아서는 회창객의 등에 대고 인제거사는

소리쳤다.

“기억해 두시오.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한 첫번째 인물이란

점을.”

구룡중 가장 젊은데다 상대적으로 잃을 것도 적은 그로선 지금이 싸움을

시작할 적기였던 셈이다.최소한 자신의 실력과 무술을 전 강호인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목적은 반쯤 달성되는 터였다.

유룡의 겁없는 도전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회창객의 앞을 이번엔 잠룡

홍구진인과 와룡 수성객이 가로막았다.이들 역시 유룡에 이어 일전불사의

출사표를 던졌다.홍구진인은 한술 더떠 막 익힌 변형내각공을 온 몸에 잔뜩

끌어올리고 있는게 아

닌가.옆에는 어느 틈엔지 맹룡 한동거사가 내각공을 펼치며

가세했다.회창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갈! 내각공을 익히는 자 누구든 내 판관필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오.”

회창객은 전력을 들여 판관필을 휘둘러 갔다.그 위세에 눌린 홍구진인과

한동거사는 내각공을 슬며시 거뒀다.당장 이 자리에서 회창객과 내각공으로

싸우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보는 장사였다.회창객 뒤에는 공삼거사가 있고

독룡 찬종검등 4룡

을 포함한 신한국방내 쟁쟁한 고수들이 아직은 내각공을 재야 무림의

무공이라며 무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물러나지만 두고봅시다.”

홍구진인등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회창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모양은

다르지만 3룡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어온 셈이다.이제 곧 주화입마에 빠진

형우공을 제외한 나머지 4룡도 가세할 것이다.싸움의 수단과 양상도

급변했다.재야무림의

무공을 익히는 자까지 신한국방에 등장한 것이다.이제는 누가 무림지존의

후계자가 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강호 최대 방파인 신한국방이 뿌리째

흔들릴지 모른다.신한국방의 방주로서 방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회창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소산공자는 묘책찾기에 골몰하고 지존은 심마(心魔)에서 깨어나다

어둠이 짙다.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소산공자는 오래도록 어둠속을

뚫어져라 응시했다.그의 시선이 잠시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한때는

무소불위의 문민공을 마음껏 쏟아내던 손이다.이 손이 이렇게 무기력해질

때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

던 일이다.

나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소산공자는 이를 악물었다.내 눈에 눈물을 나게

한 자들,그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리라.

그는 가만히 현 무림의 정세를 따져보았다.무림청문회가 열린다지만 그건

두려워할게 못된다.무림의회의원들의 무공수준이야 뻔한 것.강호인들이

몰려있는 공개된 자리에선 자신의 무공을 뽐내려고 온갖 초식(招式)을 다

동원해 공격해 오겠지만

진짜 살초(殺招:살인적인 공격)는 펼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반격에 나서면 절대 무사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눈치없이

막무가내로 덤벼들어 허명을 뽐내려는 자들이 간혹 있을까 걱정될

뿐이었다.손발이 다 잘렸다곤 하나 무림정보부와 무림지존의 거처인

청와관내 무림지존 수행비서실등

곳곳에 자신의 수하들이 아직 건재해 있다.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여야

한다.그러나 묘책이 필요하다.소산공자는 자신에게 들으라는듯 중얼거렸다.

구룡을 움직이고 재야무림을 움직일 묘책,그리고 저 멍청한 강호백성들을

감쪽같이 어루만져줄 묘책,그것만 있으면 된다.무릇 무림 역사이래 물밑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큰 일이 하나라도 있었더냔 말이다.

무림

지존이 깨어났다.한보문 사태와 천방지축 소왕자 소산공자의 연루설로

심마(心魔)에 빠졌던 그가 충격을 딛고 행보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무림총리

경질후 처음으로 무림국무회의를 소집했고 강호 고수급 6만여명에게

문민공의 부활을 약속하는

서신을 보냈으며 원로 고수들을 만나 묘책 찾기에 나섰다.슬쩍 내각공 수련의

가능성도 비쳤다.

구룡들의 제각각 출사를 부추기거나 묵인했다.꾀많은 토끼는 굴을 두개

가지고 있는 법.그는 판을 움직일 여러 수를 준비해야 했다.

“이빨빠진 호랑이라-.흥,호랑이가 어째서 죽을 때까지 호랑이라 불리는지

알게 해주지.”

어느 애비가 자식을 아끼지 않으랴마는 공삼의 소산공자 사랑은

남달랐다.얼마전까지 졸개와 칼국수를 먹으며 아들얘기를 꺼내곤 주르륵

눈물을 흘렸던 공삼이다.자신의 무림지존 등극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을

꼽으라면 공삼은 서슴지 않

고 소산공자를 들 것이다.

노룡 형우공이 자신의 팔다리라면 소산공자는 자신의 머리였다.그런

소산공자를 당시엔 세불리를 느껴 어쩔수 없이 무림청문회에 보내고

무림감찰의 재조사를 받게 하겠노라고 묵인했다.그러나 기운을 회복한

지금,그에게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한 자들을 공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공삼의 분노를 알아챈 대중검자는 곧 문하고수들에게 무림청문회에서

지나친 공격을 삼가라고 지시했다.아직은 공삼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 때가

아니다.어쨌든 현직 무림지존이 아닌가.공삼에 대한 지나친 자극은 무림

전체를 뒤흔들어놓는 엉뚱

한 결과를 부를수도 있다.그 순간에도 누구에겐지 모를 분노를 터뜨리며

공삼은 이를 부드득 갈고 있었다.내 손으로 아들을 무림옥에 수감시킬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렇게 만든 작자들 누구도 결코 무사하지 않으리라.

<이정재 기자>

-다음은 구룡과 무림청문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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