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 여대야소 → 입법 전쟁 … 점점 빼닮는 1998 - 2008 연말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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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연말 국회가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대화는 사라지고 일방주의만 남았다. 상임위 회의장 곳곳은 농성장이 되고 있다. 그사이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해법엔 먼지가 내려앉고 있다. 다른 선진국이 발 빠르게 대응책을 쏟아 내고 있는 모습과 천양지차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1998년 연말 국회 때다.

◆98년과 2008년=두 시기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유사하다. 98년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이 지상 최고의 과제였다. 올해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에 밀려들더니 실물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 상황을 정권 교체로 집권한 1년차 정부가 책임졌다. 김대중(DJ) 정부는 첫 여야 정권 교체, 이명박 정부는 10년 만의 정권 교체로 탄생했다. 두 정부 다 여대야소(與大野小)를 맞았다. 공동 여당이었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대선 무렵 121석(국민회의 78석+자민련 43석)이던 몸집을 ‘의원 영입’을 통해 그해 연말에 158석(105석+ 53석)으로 불렸다. 올해 한나라당은 4·9 총선에서 과반(153석) 의석을 확보한 데 이어 친 박근혜 세력까지 받아들여 172석의 거대 여당이 됐다. 여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해 나갈 여건은 된 셈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98년엔 한나라당이 사정 정국에 반발, 국회 운영에 협조하지 않았다. 여당은 “단독으로라도 하겠다”고 맞섰다. 그해 12월 31일 한나라당이 국회 본청 529호를 망치로 부수고 들어가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여야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그곳이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의 분실이라고 주장했다. “정치 사찰을 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국가 보안시설을 탈취한 국기 문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국회는 올스톱됐다. 규제 1만1000개 중 5000개를 줄이는 규제 개혁 법안 등의 처리가 난망해졌다. 결국 이듬해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이 “민생 및 규제 개혁 법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며 법안을 직권상정했고, 1월 5일부터 사흘간 본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140여 건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도 비슷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 하자 민주당이 저지하기 위해 전기톱·소화전 등을 동원했다. 한나라당은 “연말까지 100여 개의 법안을 처리하겠다”며 단독 국회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상임위 회의장에서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고심 중이다.

◆“위기의 골은 10년 전보다 깊어”=98년 연말 국회의 상흔은 깊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에 나섰고 꼬인 정국은 이듬해 3월 중순에야 정상화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국정 동반자라고 내민 손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맞잡으면서 장외투쟁으로 치닫던 지루한 대치가 풀렸다. 하지만 국회 상황은 10년 전과 닮은꼴이지만 위기의 골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깊다는 진단이 많다. 세계 경제의 동반 추락 때문이다. 현재의 정부·여당이 쟁점 법안 처리를 앞두고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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