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싱가포르의 부패추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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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제3세계 전체에 미만한 병이다.그런데 싱가포르는 제3세계 국가이면서도 어느 선진국보다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싱가포르는 여러면에서 한국과 유사한 점이 있다.한국과 함께

4개의 용으로 알려져 있다.한국처럼 식민지경험이 있고,한국처럼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다.또 한국처럼 시장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이런 점에서 싱가포르로부터 배울 바가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에 부임한 후 한국 기업체 대표들에게 싱가포르 정부 당국이나 싱가포르 기업체와 거래할 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를 자주 물었다.그들은 싱가포르정부나 기업체가 너무 투명하고 엄격한 것이 애로사항이면 애로사항이라고 말한

다.정부의 사업발주에 관한 정보는 주로 신문광고나 정부고시를 통해 수집하고 입찰도 공개적이고 공평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당국자와 사전에 접촉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선물이나 향응을 제공하려 해도 응하지 않는다.

필자는 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므로 정부인사들과 오찬.만찬도 하고 골프도 치고 선물도 교환하는데 지장이 없다.그러나 공무원은 법이 허락하는 범위안에서 필자와 접촉한다.바로 그 법이'부패행위방지법'이다.

싱가포르도 다른 제3세계 국가처럼 부패의 구덩이 속에서 허덕이던 시절이 있었다.공무원의 부패는 영국 식민지통치시대부터 만연해 집권당(PAP)이 1959년 정권을 인수했을 때는 극에 달했다.집권당은 집권 즉시 부패행위방지법을 제정하

고 식민지 시대에 창설된 부패행위조사국을 강화했다.

부패행위조사국은 총리 산하 독립기관으로 검찰과는 별도로 공무원 및

개인기업체 직원의 부패행위를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조사국은

부패행위방지법에 의한 범죄혐의가 있는 자에 대해 영장 없이 구속할 수

있으며,공무원 또는 공공단체 직

원 및 그 가족이 거래하는 은행의 관계장부를 조사할 수

있다.국회의원.정부 또는 공공단체 직원이 관련된 경우에는

가중처벌한다.공무원은 뇌물을 제공하거나 뇌물을 제공할 의사를 표시한

자를 체포해 인근 경찰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뇌물이

특정직업에 있어서는 관례가 돼 있다는 주장(소위 떡고물론)은

인정하지 않으며,피고인 재산의 자연증가가 해명되지 못하면 수뢰했다고

주장하는 증인의 증언이 보강증거로 사용될 수 있고,제3자가 피고인과의

특별한 관계 혹은 기타 사정에

의해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는 그 재산을 피고인의 재산으로 간주할 수

있게 돼 있다.

공무원은 팁도 받을 수 없고 공적 거래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자기들이 보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만한 향응에 응해서도

안된다.한국과 같이 공무원은 매년 자산과 투자현황을 공개해야

하고,채무가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이와같이 법이 엄격한지라 한국기업인은 싱가포르 공무원을 만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리고 만날 필요도 별로 없다.그러나 싱가포르가

엄격한 법적 제재만으로 부정부패를 없앤 것은 아니다.부정부패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공무

원의 봉급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장관급의 경우 은행가.회계사.엔지니어.변호사.제조업회사.다국적

기업체 간부의 6개 직업에서 각기 최고수입자 4명을 선정,그들의 연봉을

평균한 액수의 3분의2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봉으로 받는다.이는 92년

기준으로 연봉 83만6천

싱가포르 달러(약 64만3천 미달러)에 해당한다.3분의2만 받는 이유는

장관은 보수의 3분의1정도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봉급을 많이 주는 또다른 이유는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에서 일하기보다 기업체에

서 일하기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해 부정부패를 일소할

수는 없을까.

<사진설명>

朴尙植 <駐싱가포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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