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 대학들 “경쟁력 원천은 투자”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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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의 두 명문사학인 게이오(慶應)· 와세다(早稻田)대는 다방면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연세대와 고려대에 비유되는 두 대학은 스포츠 부문은 물론 첨단 연구 분야에서도 뜨거운 ‘소게이(早慶)전’을 벌여왔다. 몇 년 전부터는 두 대학의 경쟁 항목에 ‘기부금 모금 경쟁’이 추가됐다. 게이오는 올해 250억 엔(약 3615억원)을 모금했다. 와세다는 지난해까지 200억 엔(약 2892억원)을 모았다.

게이오대 관계자는 “첨단 장비와 시설을 제때 도입하고, 우수한 교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선 결국 자금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일본 국립대들도 2004년 법인화가 되면서 재정·행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자 앞다퉈 자금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도쿄대·교토(京都)대 등은 기업 제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법인화 이후에는 두 대학에 총동창회가 생겼다. 도쿄대 관계자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 이전만 해도 두 대학에는 학과별 동창회만 있을 뿐 총동창회는 없었다.

교토대는 2006년 자금 유치를 위한 ‘중점 사업 액션플랜’을 발표했다. 우지(宇治) 캠퍼스에 대학원생 연구 시설 신설 등 25개 사업이 포함돼 있다. 총 비용은 2009년까지 매년 6억 엔 규모. 오이에 가즈오(尾池和夫) 교토대 총장은 “재정 상황이 어려워도 교육과 연구 부문에 투자할 것은 투자해 대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선 ‘대학 경쟁력의 원천=투자’라는 등식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 일 정부도 첨단 연구시설 확충을 위한 ‘교육 인프라 구축’에 집중적으로 재정 지원하고 있다. 이 분야에는 올해 1조5232억 엔(약 22조원)이 투입됐다. 전통적인 국립대 중시 정책에 따라 약 77%가 국립대 몫이었지만, 법인화 이후 도입된 경쟁 체제로 국립대들의 예산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으면 예산을 배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교육 인프라 예산을 지원받은 대학들은 모두 교육연구조직을 크게 정비한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토대로 도쿄대·도쿄해양대는 해양 조사, 도쿄예술대는 콘텐트 분야 등 신설, 쓰쿠바(築波)기술대는 청각·시각 장애인 교육 체계 정비, 와카야마(和歌山)대·류큐(琉球)대는 관광 관련 학부 신설 등을 제시해 첨단성을 인정받아 예산을 받았다.

일 정부의 재정도 매년 30조 엔의 적자 국채를 발행할 정도로 빠듯하지만 교육 투자에는 아끼지 않는 편이다. 문부성 관계자는 “매년 복지예산과 공공건설 예산은 줄이고 있지만, 교육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에서 고등교육 예산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 고등교육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올해 7%를 증액한 데 이어 내년에도 3% 많은 241억 유로(약 44조3200억원)로 확대키로 했다. 국내 총생산(GDP)의 2%를 웃도는 수준이다. 프랑스 정부는 또 2012년까지 50억 유로를 고등 교육 분야에 추가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반면 한국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규모는 너무 열악한 수준이다. 한국 정부가 고등교육에 쓴 공교육비는 GDP의 0.6%(2006년 기준)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1%)의 절반에 불과하다.

◆특별취재팀 홍콩=최형규 특파원, 뉴욕=남정호 특파원, 도쿄=김동호·박소영 특파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파리=전진배 특파원, 서울=박경덕·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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