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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왜들 난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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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전경

어릴 적, 장래희망을 쓰라며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종이에, 상당수 친구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을 적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판사는 판결을 하는 사람’이라는 수준의 인식만 있었지만, 법조인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가끔씩 사법연수원 앞을 지나면 어릴 적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내년 3월부터는 지옥의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이지만.

2008년 겨울, 대한민국 대학가는 로스쿨로 요동쳤다. 사법시험이라는 진입 장벽이 로스쿨로 변하면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로스쿨에 지원자가 몰린 탓이다. 사실 어렴풋하게 법조인을 꿈꾸던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겼다. 때문에 시행 첫 해라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원자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LEET 시험에 응시했다.

흔히 법조인을 꿈꾸는 소위 ‘로스쿨 세대’의 범위는 얼마나 될까. 고교 진학 전 진로를 설계하는 중학교 3학년에서부터 재기를 모색하는 30대 중반 직장인까지를 감안한다면 그 범위는 15세~35세 정도가 될 것이다. L-세대라 명명할 수 있는 1535세대는 20여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법조인이라는 꿈 주위를 맴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법조인에 열광할까. 그 이유는 사실 쉽다.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이라는 위치가 주는 안정성과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법조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다른 입장에 있을 때에 비해 현저히 넓기 때문이다.

2007년 10월 18일. 나는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가난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 보낸 아들이 원하던 시험을 붙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눈물 흘리는 부모님을 보고 어느새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합격 이후 내 생활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졸업이 1년 남아 사법연수원 입학을 유예하고 남은 학기를 채웠지만, 시험 합격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언론사 인턴도 하고, 고시계라는 잡지에 글도 연재했다. 그 뿐 아니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꿈도 못 꾸던 여행도 다녀오고, 3년이 넘는 고시생 생활에 술을 사주던 형들한테 오히려 사는 처지가 됐다. 물론 사법시험 합격자 대상의 마이너스 통장 덕택이지만.

사실 사법시험 합격만으로 사회적 지위나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매 해 1000명이나 배출되는 사법시험 합격자 되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라 할 수도 없다. 단지 하나의 전문직을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렇지만 주위에선 나를 전과 다르게 본다. 사법시험의 경쟁률은 1차는 평균 8:1, 2차는 5.3:1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고시나 채용전형의 경쟁률에 비하면 오히려 쉬워 보이는 것이 사법시험이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가장 어렵다고 불리는 이유는 공부 자체가 워낙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사법시험 준비생의 생활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온 배우는 공부를 한답시고 법전을 외우고 있었다. 아니 저런!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법전에 있는 조문을 몇 줄이나마 외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법시험은 주어진 조문을 어떠한 사안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능성과 판례의 태도 및 그 정당성을 공부하는 시험이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민법조문에 불구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필요한 민법 교재의 페이지는 최소 2000-3000페이지가 넘는다. 이런 방식으로 7가지 가량의 법을 공부해야하니 경쟁률이 아닌 공부의 양에 이미 질려버리는 시험이 바로 사법시험이다. 이 정도의 공부량은 로스쿨로 체제가 변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총10회 정도에 걸쳐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일부의 잘못과 오해로 법조인이 백안시되고 있는 형편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법조인이다. 그 가능성 역시 무한하다. 누군가를 돕고 싶으면 인권 변호사를 할 수 있고, 어떤 직업에 관심이 있으면 그 직업의 전문 변호사가 되면 된다. 법을 수호하는 검사가 될 수도 있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판사가 될 수 있다. 이제 로스쿨 시대가 열리고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 단지 판사‧검사‧변호사가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 법조인이 활약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물론 변호사 자격증이 ‘부와 성공의 보증수표’던 시대는 지났다. 내년 3월 사법연수원에 임관될 나 역시 새로운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법을 전공하고 그 전문가가 되는 것은 감히 ‘무한한 가능성의 보증수표’라고 칭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장은호 칼럼니스트 jgoon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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