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ㆍ전기톱'에서 1년 후 '해머ㆍ물대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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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12월 14일 본회의장

국회는 ‘전쟁터’였다. ‘이명박 특검법안’을 놓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오전 9시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으나 갑자기 장소를 본회의장으로 바꿨다. 이곳에 모인 의원은 110명 정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신당 의원들의 입장을 막기 위해 쇠사슬과 소파 등을 이용해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문을 봉쇄했다.
신당의 반격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신당 의원 120여명은 본회의장 문이 잠겨 있자 연좌 농성으로 전의를 다졌고 의원들 사이에선 “5공이 부활한다는 불길한 조짐이 든다” “의원생활 20년짼데 의사당에 못 들어간 경우는 처음이다” 등의 목소리가 울렸다. 세 시간 뒤 임채정 국회의장의 지시로 국회 경위들이 전기톱을 들고 나타났고 20분 뒤 쇠사슬은 잘려 나갔다.

#2. 2008년 12월 18일 외통위 회의실

국회는 ‘전쟁터’였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의 일촉즉발 상황이 연출됐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회의장 기습 점거를 막기 위해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이곳을 지켰다. 오후 2시, 한나라당 의원 10명만 참석한 가운데 개회를 선언했고,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고 법안심사소위로 넘기기까지 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의장 선점 사실을 알고 원혜영 원내대표 등 당직자 150여명이 4층 회의실로 몰려들었다. 한나라당 박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국회 경위들이 민주당 의원들의 회의장 입장을 원천 봉쇄했다. 민주당은 회의장 옆문으로 이동해 해머로 문 손잡이를 부쉈지만 개문에 실패했고 이후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회의장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과 국회 경위들은 책상과 소파를 2단으로 쌓아올려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의 회의장 입장을 막았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다시 해머와 정을 동원해 한쪽 문을 뜯어내고 소화전을 끌어다 물대포를 쐈다. 국회 경위들은 밖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했다.

2007년과 2008년, 1년의 간격을 두고 국회에서 벌어진 난투극이다. 한나라당은 10년 만에 정권을 잡아 여당이 됐고 대통합민주신당이 전신인 민주당은 야당이 됐다. 1년 전 여야가 뒤바뀐 상황이었지만 두 당의 격투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회의장을 선점해 문을 걸어잠그는 방식을 택했고, 민주당은 뒤늦게 알고 각종 연장으로 문을 부수는 방식을 택했다.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고, 몸싸움이 이어졌다. 사실상 ‘패싸움’이었다. 단독 상정이라는 오명은 썼지만 한나라당은 올해 안에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종결한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민주당과 민노당 등은 “날치기, 사기상정” “민주주의를 유린한 폭거”라며 ‘원천무효’를 주장해 원만한 협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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