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의 구조적 식량난 해결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95년 이후 해마다 더 심각해져 현재 위험수위에 도달한 북한의 식량위기는 자연재해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척박한 자연환경아래서 비효율적인 농업생산방식을 통해 수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려는 북한농업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

다.

북한은 식량배급체계의 신축적 운용,외부지원 수용,제한적 농업개혁과 곡물거래 허용,가축도살,그리고 추수시기 전에 총 옥수수 수확량의 절반을 풋옥수수 상태로 배급하는 비상수단동원 등을 통해 나름대로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한 안간힘을 써

왔다.그러나 이제는 중국식 농업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공업제품수출 등을 통해 곡물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미국.중국.유엔의 식량관련기관에 의하면 북한은 현재 해마다 약 4백만~4백50만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96년의 경우 세계식량계획(WFP)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약 4백30만의 쌀과 옥수수를 생산했는

데 여기에서 홍수로 피해를 본 30만을 빼고 추수 전에 이미 소비한 옥수수와 추수 후 손실및 종자.사료.산업용 곡물을 감안하면 지난해 11월 현재 가용곡물은 약 2백50만에 불과하다.

북한주민 2천2백만명은 2백50만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섭취열량의 75%를 곡물에서 획득한다는 가정아래 북한주민이

우리나라 60년대 초반 수준으로 하루 1인당 평균 2천1백㎈ 정도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곡물 약 4백50정

도가 필요한데,이는 북한 전체로 치면 하루 1만 정도가 소요되는

수준이다.즉 2백50만을 가지고 2백50일 정도밖에 버텨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은 현재 배급량을 2백 이하까지 줄여 최대한 버티려고 하고

있으나,신진대사 유지와 최소한의 활동에 필요한 곡물량이 3백40 정도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영양실조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 감소 등 심각한 결

과를 초래할 것이다.

식량위기는 보통 2년째부터 심각해진다.첫해는 가축도살.물물교환을

통한 식량확보 등 비상수단을 동원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으나 이와

같은'자산'이 처분된 둘째 해부터는 개인 차원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원된 식량의 군량미 전용(轉用)은 민감한 사안이지만,북한의 병력이

총 인구의 20분의1 수준이므로 북한이 군량미를 6개월분 비축한다고

해도 이 양은 전체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는 20분의 6개월,즉 열흘분

식량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점을 직시해

북한체제관리 차원에서라도 지원책을 검토해야 한다.하지만 북한이

4자회담에 참석하는 반대급부로,또는 인도주의적 명분아래 일과성의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북한의 구조적

경제난 해소나 남북관계의 지속적 진전에 별 도움이 안되는 정책이다.

95년처럼 대규모의 식량을 일시에 무상지원해'쌀 주고 인공기

올리는'결과까지 초래하기보다는 여러차례에 걸쳐 작은 규모의

식량지원을 국제기구 감독아래 제공해 북한주민에게 배급되는지

확인하고,지속적인 식량지원.비료공급.종자개량 등을

남북 공동자원개발및 경작 등 장기적 사업과 연계해 지원에 대한 대가를

어느정도 확보하는 것이 북한의 경제난을 북한 스스로,구조적으로 풀어

가도록 돕는 방법이다.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북한의 지속적인 개혁을

조건으로 북한의 기대수익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장기적

경협(經協)사업을 고안해 추진해야 한다.식량난을 비롯한 북한의

경제위기는 근시안적인 정치논리나 막연한 인도주의적 감상에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고질화됐기 때문이다. 임원혁〈KDI 연구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