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보국정조사특위, 말잔치 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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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 한보국정조사특위가 임시국회 마지막날,그것도 자정무렵에야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해 내일부터 활동에 들어간다.여야는 한보사건의 국정조사를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해놓고 근 한달을 허비했다.그래놓고 이제와서 45일간 활동을 한다니 금년

상반기 내내 한보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됐다.나라의 안팎 사정으로 보아 우리가 이렇게 스캔들에 휘말려 장기간 일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닌데 여야의 당파적 이해 때문에 이렇게 늘어지고 있으니 우리 정치권의 무책임과 비능률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여야는 이번 국정조사의 핵심을 청문회로 상정하고 있다.그래서 청문회에 나설 증인채택.생중계 문제로 시간을 끌었다.결국 88년 5공청산청문회 이후 처음으로 생중계되는 청문회가 열리게 됐다.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생중계 청문회

가 열린다 하여 저절로 진실이 규명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여야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청문회의 여러 부작용을 직접 목격했다.이번 역시 그런 조짐이 있다.청문회 스타가 어떻고,대선 전략에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번 역시 정치적 말잔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정치적 쇼와 요

설로 스타가 되려 꿈꾸기보다는 단 한마디의 질문이라도 진실의 핵심을 찌를 수 있는 성실함과 진지함을 보여줘야 한다.대통령선거의 표만 의식해 실체도 없는 정치적 공세로 상대당을 비난하는 말잔치가 되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국조위의 활동은 정치적이기보다는 실무적이어야 한다.TV카메라 앞에서 쇼를 벌일 생각보다는 단 한가지 증거라도 더 찾아내겠다는 실무적인 열정이 필요하다.어떻게 한보에 허가가 나가게 됐으며,누가 거액의 대출을 지시했으며,현철씨

의 국정개입수준은 어떠했느냐 등의 오리무중인 문제들을 자료와 증언의 추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국정조사가 끝날 즈음이면 사건의 실체와 의혹의 진상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밝혀졌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검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역시 국회가 해냈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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