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에 공화국 무정부상태 - 김정일 작년12월 비공식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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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정부 상태에 이른 심각한 위기상황에서도 당 간부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이제는 누가 일을 잘못했는가를 계산하겠다.”

월간조선에 게재된'김정일(金正日)의 연설(지난해 12월7일)'은 시종 질책으로 이어진다.심지어 당 중앙위 원로간부들의 무사안일한 태도를 겨냥해“중앙당이 노인당.송장당이 될 수 있다”고 극언을 퍼붓고 있다.

김정일은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당 비서들에게 대책을 마련해 올리라며 발언을 맺었다.

월간조선측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연설내용이라고 밝혔지만 그의 공식석상 연설과 격식등에서 큰 차이를 보여 대학방문후 수행 측근및 대학 관계자들과 가진 비공식 모임에서 행한 발언이 아닌가 여겨진다.

◇식량난=오늘날 식량문제로 인해 무정부 상태가 조성되고 있는데는 정무원을 비롯한 행정.경제기관 일꾼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당 일꾼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쪽으로 가면서 보니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길가에 쭉 늘어서 있더라.다른 지방에 가봐도 어디에나 식량을 구하러 오가는 사람들로 넘치고 역전과 열차칸에도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으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

어디에나 가슴아픈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도.시.군당 책임비서들을 비롯한 당 일꾼들은 거기에 머리를 내밀지 않고 회의만 하고 있다.오늘 당 일꾼들의 능력과 책임성은 식량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데서 나타나야 한다.

현시기 제일 긴급하게 풀어야할 것은 식량문제다.식량을 비롯해 먹는 문제만 풀리면 정말로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는 제일이다.

◇체제위기 인식=당 일꾼들이 지금처럼 무사안일하게 일하면 앞으로 해방직후 일어났던 신의주학생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담보할 수 없다.

지금 비사회주의적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사회안전원을 비롯한 독재기관 일꾼들을 동원해 법적으로 단속하려고만 하고 있다.

◇군부신뢰=인민군들의 사상.정신상태는 매우 좋으며 나는 이에 만족하고 있다.여러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은 당이 변질되고 당이 군대를 틀어쥐지 못한 것과 연관돼 있다.

지금 우리는 인민군대에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아마 군량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 미 제국주의자들이 당장 쳐들어올 것이다.군량미가 없으면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군량미는 무조건 보장돼야 한다.

◇당정간부 질책=지금 인민들이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권위 때문이지,당 조직과 당 일꾼이 일을 잘해 그런 것이 아니다.오늘 우리 당 안에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들은 없지만 당 조직들이 맥을 못추고 당 사

업이 잘 되지 않다보니 사회주의 건설에 적지않은 혼란이 조성되고 있다.

사회의 당 조직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당 사업이 잘 되지않는 기본원인은 당 중앙위 일꾼들을 비롯한 당 일꾼들이 일을 혁명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사회의 당 일꾼들은 군대 정치일꾼들보다 못하다.

이제 누가 일을 잘못했는가를 계산할 때가 됐다.머리를 쓰지 않고 뛰지 않는 당 일꾼,걸린 문제를 풀어 나가지 않는 당 일꾼은 필요없다.

◇청년학생 사상=김일성종합대학을 둘러보고 학생들의 예술소조 공연도 보았는데 학생들이 기백과 양기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최근 인민군 군부대를 현지지도하면서 군인들을 많이 만나보고 그들의 공연도 보았는데 어디에나 전투적 기백이 차 넘

쳤다.

청년군인들과 대학생들의 기백차이는 바로 군대 정치사업과 사회정치사업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김일성종합대학 책임비서가 학생들에게 사상교양사업을 잘 못하는 것같다.그는 인민군 군단 정치위원보다 못하다.

◇자기평가=지금 나의 사업을 똑똑히 보좌해주는 일꾼이 없다.나는 단신(單身)으로 일하고 있다.당 중앙위원회의 책임 일꾼들이 나의 사업을 도와주지 못할 바에는 있으나 마나다.

식량문제와 관련,협의회를 소집하려다가 오늘 동무들을 만난 기회에 말했는데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당 중앙위 비서들이 모여앉아 협의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경제난 해결방안=지금처럼 정세가 복잡한 때에 내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서 걸린 문제들을 다 풀어줄 수는 없다.내가 혼자서 당과 군대를 비롯한 중요 부문을 틀어쥐어야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 혁명과 건설에 돌이킬 수 없는 후과(후유증)를 미칠 수 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나에게 절대로 경제사업에 말려들어선 안된다고 하시면서 경제사업에 말려들면 당 사업도 못하고 군대 사업도 할 수 없다고 여러번 당부했다.

인민들은 전기사정때문에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고,석탄사정.철도형편도 말이 아니다.우리는 지금 3년 동안의 연이은 흉년으로 국제기구에서 주는 식량을 받아먹고 있다.

<사진설명>

김정일 軍부대 시찰

김정일이 최근 군부대를 자주 시찰하고 있다.한 군 행사에 참석한

김정일이 군 간부.사병들의 환호에 함께 박수치며 답하고 있다.

[통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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