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알바니아 시위 배후세력 있다- 윌스트리트저널 14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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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알바니아 정부는 13일 티라나 공항과 두러스 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다.2개월전 피라미드 금융사기사건이 터진 이래 계속되고 있는 비상사태로 세계의 언론이 발칸반도에 몰려들었지만 언론은 대부분 사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언론의 생각과는 반대로 알바니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분노한 시민들은 마닐라에서 마르코스를 쫓아내고,프라하에서 공산주의를 넘어뜨린 군중과는 성격이 다르다.최근의 내전상태 배후에는 옛 공산주의자들과 알바니아 마피아가 형성한 연합전선이

있다.알바니아 시위대는 공권력에 폭력을 가하고 있다.이달초 경찰은 반군 거점 블로러에서 쫓겨났다. 일부 언론에서는 블로러가 마치 60년대 피델 카스트로가 봉기했던 시에라 마드레라도 되는 듯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런 보도에는 문제

가 많다.

살리 베리샤 대통령은 지금 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92년 스탈린주의 정권이 무너졌을 때 블로러는 알바니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무정부상태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시위대 지도자중 상당수는 전 공산당 비밀경찰 요원이었

고 이후 이들에 의해 피라미드 사기에서부터 마약.인신매매같은 범죄들이 번창했다.공권력 행사는'공산독재 재건'이라며 비난받기 일쑤였다.비판자들의 주장과 달리 베리샤 정부는 지나치게 나약했다.블로러가 밀수꾼들의 천국이 된 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지난 가을 선거 승리에 고무된 베리샤는 아드리아해 밀수 단속을 위해 마피아에 공세를 가하자 마피아는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꾼 전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했다.많은 마피아 조직원들이 과거 비밀경찰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연합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사기사건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개입이 도화선이 됐다.대다수 알바니아인들에겐 정부의 간섭이 돈 벌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으로 비춰졌다.야당이 그런 불만을 부추겼다.블로러의 범죄집단은 마치 의적(義賊)인양 행세하며

이탈리아에서 밀수해온 중화기들로 블로러에서 경찰을 몰아냈다.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알바니아 공산주의자들은 혁명노선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야당인 사회당은 지난해 8월에야 정강에서 표면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삭제했으며 많은 당원이 여전히 그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마피아와 마르크스주의자의 연합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91년 옛 소련 그루지야 공화국의 경우를 상기해보라.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같은 단체들은 그루지야 정부의 강압적인 야당탄압을 비난했지만 마피아와 손잡은 야당은

무력을 동원,권력을 장악했다.인권단체들과 서방국가들은 알바니아에서 이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도록 방관해서는 안된다. [정리=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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