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앞둔 레스비언 스릴러 '바운드' - 남성중심 사회 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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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90년대 영화광들의 우상이 된 타란티노나 코엔 형제의 작품이 팬들을 매혹시키는 요소는 무엇인가.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피범벅의 폭력,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코믹한 대사,스릴 만점인 의외의 반전,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정교한 이야기 구성과 편집,선입관을 배제하면서도 상징성을 부각시키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이미지와 장면

연출등을 들 수 있다.

결국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극한까지 몰고 가려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데뷔작'바운드'는 이러한 요소들을 유감없이 조합시켜 놓아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운드'는 작품소재와는 관계없이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간명하면서도 직설적인 장면연출 때문에 코엔 형제의 초기작'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에 비견된다.따라서 각본.감독을 도맡은 워쇼스키 형제가'또 다른 코엔 형제'로

일컬어진다.

두 동성애 여자들이 마피아의 거금을 가로채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릴러인'바운드'에서 B급영화의 조연으로 어렴풋이 기억되는 배우 3명은 단 2개의 아파트 세트에서 코엔 형제류의 흥미를 자아낸다.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레스비언들의 로맨스와 시종일관 이어지는 의혹과 음모등 필름누아르의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대비되는 것이 보는 재미를 높인다.

워쇼스키 형제는 바운드라는 제목으로 폭력과 부조리에'속박된(bound)'나약한 여자들이 지배세력의 허점을 뚫고'반동,도약(bound)'한다는 이중적인 뜻을 시사한다.

강인하고 도발적인 남성적 여성(지나 거숀)과 맹한 표정으로 일관하면서도 통렬하게 남자들을 파멸로 몰고가는 마피아의 노리개(제니퍼 틸리)사이의 동성애는 마피아 조직이 대변하는 남성지배의 기존사회를 조롱한다.

막무가내의 폭력을 일삼는 비열한 마피아들과 대결하는 레스비언 커플의 끈끈한 애정의 배경은 아무런 설명없이 서두에서 과감한 섹스장면으로 암시될 뿐이다.

세계적인 섹스 클리닉의 대가 수지 브라이트의 조언까지 받았다는 이 장면은 여자끼리 진정하고 충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실현시킨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일궈놓은 부조리한 체제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라는 영화 전편에 깔린 사상을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포인트다.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이 상징적인 섹스신은 그러나 한국관객들에게 일부만을 제외하고 수입회사에 의해 가위질당한채 상영돼 스토리 구성의 묘미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폭력과 부조리로 점철된 남성사회를 통렬하게 물리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 스릴러 영화'바운드'.워쇼스키형제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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