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복 터진 내 인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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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15면

나는 본디 입맛이 천하다. 분식집에서 혼자 라면과 김밥을 먹고 3500원 내고 나올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가끔 요리를 취재하면서 미식의 세계에도 살짝 눈을 떴다. 최근 두 달 동안 내 먹을 복의 뇌관이 터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맛있고 귀하고 예쁜 음식을 계속 소화시켰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터넷 팬 카페도 생길 정도로 인기 높은 ‘테이스티 블루바드’ 최현석 셰프의 창작 요리와 뉴욕의 톱 레스토랑에서 수련하고 ‘레스쁘아’라는 비스트로를 차린 임기학 셰프의 프랑스 가정식이다.

‘순수 조선파’인 덕분에 틀에 매이지 않고 ‘미친 요리’를 시도할 수 있었던 최현석 셰프의 창작 요리에는 ‘반전의 놀라움’이 있었다. 이건 무슨 수프인가 싶어 한 술 떴더니 영락없는 삼계탕이다. 대파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싶어 물었더니 대파를 썰어 넣는 대신 녹색의 대파 크림을 만들어 수프 위에 뿌렸단다.

임기학 셰프의 요리는 또 달랐다. 그는 새로운 요리보다 전해 내려오는 프랑스 가정식을 ‘제대로’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내가 먹은 건 ‘시나몬과 사과로 찐 삼겹살과 초리조 필라프’였다. 쉽게 말해 초리조라는 쌀로 만든 밥 위에 정성 들여 찐 삼겹살을 얹은 요리다. 프랑스에도 어머니의 손맛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맛이 아닐까 싶었다.

내 먹을 복은 며칠 전 홍콩에서 제대로 작렬했다. 1박2일간 그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과 인터콘티넨털 호텔을 오가며 5000원짜리 백반 먹듯 매 끼니를 양식, 중식, 뷔페로 즐겼다. 페닌슐라의 ‘펠릭스’에서 홍콩의 야경을 보며 내 인생 최고의 푸아그라를 즐겼고 인터콘티넨털에선 뷔페 음식도 이렇게 하나하나 훌륭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 작자,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전 지구인이 경제 위기로 고통받는 이 판국에 비싼 음식 먹었다고 자랑하는 건가? 오, 제발. 그건 오해다. 반전은 이제 시작된다. 사실 내 먹을 복이 지난 두 달간 폭발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먹을 복을 누렸다.

그 복은 ‘어머니’라는 존재 그 자체다. 내가 서른일곱 살 먹는 동안 그녀가 나를 위해 쌀을 씻어 밥을 지었을 그 숱한 순간과 시간을 생각하면 아, 나는 갑자기 가슴 먹먹해져 할 말 잃는다. 그녀는 무슨 죄로 나를 위해 음식으로 공양했나. 나는 무슨 권리로 그것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배설했나. 나는 37년간 먹을 복에 파묻혀 살았다. 그것은 어떤 효로도 다 갚을 수 없음을 안다. “엄마, 나, 밥!”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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