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검찰 특단 조치 나올까- 최상엽법무장관 '자성' 발언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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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의 현상황에 대한 우려는 검찰 안팎이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법치를 통한 사회안정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이다.

신임 최상엽(崔相曄)법무장관이 6일 취임사를 통해 법무부와 검찰의 현주소를“국민 불신과 불만의 표적”으로 진단하면서 신뢰와 권위회복을 최우선 당면과제로 꼽은 것은 충격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그러나 개각의 배경과 검찰을

총괄하는 주무장관이라는 그의 자리를 감안하면 통상의 발언과는 다르게 들린다.

그의 상황인식은 무엇보다 한보사건 수사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보사건 수사 발표후 검찰의 권위는 바닥까지 내려간 느낌이다.검찰을'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로 지칭하고“국민의 이름으로 해고한다”고 극언으로 비판하는 광고를 낸 한 중소기업인에게 시민들의 격려가 쇄도하고 이에 대한 지지광고까지

잇따른 것은 그런 상황의 극적인 한 단면이다.

이같은 상황은 검찰이 스스로 불러온 난국이다.

5.17,전직대통령 비자금,선거법 위반 사범등 일련의 정치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은'철저히 권력의 눈치를 보는'속성을 또 드러낸게 화근이다.상부 의지가 확인된 뒤에야 마지못해 수사에 나섰고 수사 뒤끝엔 거의 예외없이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 아니라 형식적인 사법처리로 진실을 호도했다는 호된 지탄이 쏟아졌다.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선거사범에 대해 법원이 최근 무더기로 재정신청을 받아들인'망신살'도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의 현상황에 대한 인식은 내부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번져가는 기미다.

“소장 검사들이 검찰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수뇌부가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연명문서로 작성해 수뇌부에 전달할 방법을 모색중”이란 얘기도 나돈다.한 중견 검찰간부는“집사람조차 검사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을 해

충격을 받았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崔장관의 취임사를 신임 장관의'인사치레'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4년여간 재야 법조인의 눈으로 검찰을 지켜본 그가 준비했던 당초의 취임사 원문은 비판의 강도가 훨씬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崔장관이 구체적인 개혁안을 갖고 취임사의 방향을 잡았는지는 분명치 않다.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대법관 출신 전임 장관과 달리 대검차장검사까지 지낸'검찰맨'인 신임 장관이 개혁을 강조한만큼 반드시 후속조치가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쇄신인사다.기소독점.기소편의주의의 권한을 부여받은 독립관청이라는 검찰조직의 특성상 인사를 통한 물갈이가 가장 쉬운'특단의 조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지연.학연등 각종 인연을 바탕으로 인맥을 형성하고 권한과 정보를 독점할 수 있게 한 인사의 편향.난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게 일치된 인식이다.

지난 1월의 인사가 대검과 서울지검등 검찰의 소위 주요 보직에 특정지역 연고자들만 기용해'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던데다 한보수사에 대한 여론 순화차원에서도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인사후 1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고 당시 인사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崔장관으로서는 새로 판을 짜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이같은 쇄신인사는 전례가 없었다는 점도 신임장관으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더구나 인사가 장관의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검찰 수뇌부의 입장도 전혀 무시할 수만은 없는게 현실이다.

한편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는 한보사건이나 김기섭(金己燮) 안기부 전운영차장의 비리의혹 같은 사건수사를 본격적으로 재개해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 역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검찰개혁은 미룰 수 없는 국가적 현안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재임기간이 1년도 안될 장관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점에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상언 기자〉

<사진설명>

6일 오전 과천 법무부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최상엽 신임

법무장관이“지금은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나라를 크게 걱정하고

있는 중대한 난국”이라며 강한 어조로 검찰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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