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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선 산타가 현금을 뿌린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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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호주 정부가 산타클로스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물론 경기 부양을 위해서다. 러드 총리는 “돈 받으면 아끼지 말고 제발 좀 써 달라”며 애원하고 다닌다. 호주 정부는 이번 보너스 지급으로 경제성장률이 추가로 0.7%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자리 7만5000개가 느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가뜩이나 엄동설한에 외환위기 때를 능가하는 경기침체로 더욱 얼어붙은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성탄 경기는 언감생심이다. 우리가 흑자 재정인 호주를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꼭 이런 방법이 최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소비를 북돋우는 분위기 조성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꽉 잠겨 있는 국민의 지갑을 열 수 있도록 정부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내야 한다. 일시적 사탕발림일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도 크리스마스나 내년 초 설날에 맞춰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보너스 프로그램을 제한적으로라도 실시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민당과 함께 독일의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은 500유로(약 9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8200만 국민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요아힘 포스 사민당 원내 재정 담당 대변인은 “이런 방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과 대만도 소비용 상품권이나 현금을 나눠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금 세계 주요 국가 정부들은 분과 초를 다퉈 대공황 이후 최대의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성탄절 현금 보너스는 빙산의 일각이다. 연일 대규모 뉴딜과 경기 부양책 발표가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를 보면 느긋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위기의식이 있기나 한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이따금씩 감질나게 대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찔끔찔끔 마지못해 내놓는다는 인상이다. 신속히 선제적으로 대응해도 될까 말까 한 판에 미적지근한 대책들만 나오고 있으니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자동차에 붙는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도 말만 무성했지 가타부타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전시(戰時)나 다름없는 이런 상황에선 사용 가능한 모든 재원과 정책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은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아는 상식이다. 꺼져가는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대적인 뉴딜정책을 검토해볼 수 있다. 대운하에 버금가는 대규모 토목공사 카드도 있을 것이다. 좌고우면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불요불급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큰돈 들이지 않고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각종 규제는 이참에 시급히 혁파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동산값이 폭등할 때 만든 ‘규제를 위한 규제’는 대폭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여의도를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경제가 위기인데도 허구한 날 티격태격 싸움질이나 하며 허송세월하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합의를 이뤄낸 게 없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경환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