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언론, 행정부 對韓불만 대변- 한반도 현안 어떻게 보고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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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 경수로회담.4자회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 역할을 하고 있다.이에 따라 미국언론은 한반도 문제를 자주 다루고 있다.뉴욕 4자회담 설명회가 열리기까지 잠수함 사건,황장엽(黃長燁)북한노동당비서 망명,식량 지원 재개등을 다뤘던 미국 언론의 시각은 우리가 참고해야 하는 또다른 당사자의 눈과 귀인 셈이다. [편집자註]

◇잠수함 사태와 4자회담 논란,한.미 양국의 시각 차(差)=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1월17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썼다.

한.미 양국이 지난해 4월 공동 제의한 4자회담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訪韓)을 대가로 한국의

지지를 얻어낸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4자회담은 한국 주도로 제의된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이었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과는 딴판이었다.

아직까지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정식으로 확인해 준 곳은 없다.미국정부

설명은 여전히“4자회담은 한.미 양국 공동의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문구일 뿐이다.

지난달 17일자 워싱턴포스트 기사도 주목거리였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7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에 두가지를 요구하며 네가지 양보사항을 제의했다.

두가지 요구는 4자회담 설명회 참석 약속과 대중동 미사일 수출문제를

미국과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또 네가지 양보는 평양연락사무소 개설 본격 논의,북한영공 통과

여객기들의 영공 사용료(연간 1천만 달러) 지불 금지 해제,인도적 식량

지원을 위한 공식 조직 가동,카길사의 곡물수출 허용등이었다.

이같은 내용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한국 정부가 끝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지만 그보다는 워싱턴포스트가 이

기사를 쓴 시점과 기사의 시각이 더 주목을 끈다.

黃북한 노동당비서 망명이란 돌발 사건이 이례적으로 서둘러 공식

발표되고 잇따라 그의 석명서등이 공개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예상못할

상황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일던 시점에 미 국무부는 그간의

속사정을 자세히 흘려주었다.

익명의 미 국무부 관리들을 인용해 쓴 이같은 두 유력지의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의를 제기하거나 못마땅해 했지만 미 국무부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두 기사는 미국 정부가 그간 대외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일부 공개하면서 그와 관련해'불편한 심기'를 가졌던

미국정부의 입장을 미언론이 대변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 식량지원 논란,확연히 대조되는 미국내 두 입장=미국내 주요

언론들이 항상 정부와 입장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대북 식량지원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다.지난달 21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우연히도 같은 날

서로 정반대 주장을 폈다.

진보성향의 뉴욕타임스는'한국내 친구와 적'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북

식량지원이 북한의 돌출행동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했다.

반면 보수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은'북한이 붕괴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글을 통해 몰락하는 북한의 연명을 돕지 않는 것이 인도적.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상반되는 주장의 기고를 번갈아 실었다.

지난달 9일 실린 월드 비전 국제담당부사장 앤드루 나치오스의 글은

미국이 식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한국에 끌려다니고 있다면서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한 내용이었다.열흘 뒤 실린 진보정책연구원의 로버트

매닝과 헤리티지재단의 아시아담당 실장 제임스 프리스텁의 공동기고는“군사적 위협까지 하며 식량

원조를 호소하는 북한에 국제사회는 체제변화를 포함하는 포괄적 대안을

제시해 이를 선택토록 요구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확연히 상반되는 것들이지만 두 주장 모두를 관통하는 논리가 있다.

이는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는 미언론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

정부의 현재 입장은 바로 이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사진설명>

4者회담 공동제의

지난해 4월 제주도에서 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4자회담을 제의하는 장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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