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 ② 한혈마(馬), 실크로드를 달려 새 세상을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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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이 발 딛기 이전의 서역은 이란 아리안계의 백인들이 주도한 세계였다. 그러나 장건의 탐험여행으로 인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몽골리언들이 진출하게 되면서 유라시아 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서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기존의 실크로드는 다양한 세계인들로 성황을 이루는 중계무역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바닷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까지는 근 2천 년 동안 그 명성을 떨치며 인류의 삶을 이어갔다.

장건과 그의 말 동상


장건이 방문한 나라로는 대원, 대월지, 대하, 강거이고, 갖가지 진귀한 자료를 제공해준 주변국으로는 안식국(페르시아), 전월국, 신독국(인도)등이 있다. 북쪽의 강거에 기거하는 유목민들은 활을 쏘는 능력이 탁월해서 주변국의 부러움을 샀는데 장건은 이를 놓치지 않고 전수받아 한나라에 자세히 보고했다. 뿐만 아니라 북쪽의 농경은 벼와 보리 외에도 맛있는 포도주를 생산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또한 대하에서 동남으로 수 천리 떨어진 곳에는 신독국(인도)이 있었는데 이곳의 코끼리라는 짐승은 거대하고도 영특해서 중국인들을 몹시 놀라게 했다.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한 가득 가지고 돌아온 장건 일행은 한 무제에게 크게 치하를 받았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장건은 여행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왕에게 바쳤는데 그 내용 중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원국의 뛰어난 말 사육술에 관한 것인데 이는 훗날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국운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한나라 사신단에게 극진한 대접을 베풀어준 대원국(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놀랍도록 뛰어난 명마가 많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뛰어난 사육술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사나운 야생마라도 금방 길들입니다. 그 말들은 전사들의 명마가 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고, 농사를 짓는 데에 요긴하게 쓰입니다. 대원국은 한혈마라 부르는 최고의 명마들을 몰래 기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적으로는 유비무환을 기하고 외적으로는 서방의 먼 나라들과 교류를 하며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서방의 대국인 로마와 페르시아 제국에 관한 이야기는 왕께서 들으시면 몹시 기뻐하실만한 진귀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실크로드의 주인이 되려면 대원국의 말들을 수입해야 합니다. 명마를 불러들여 국가의 내실을 기하고 많은 탐험가들을 기용하여 명마와 함께 신세계로 향하는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어줄 명마, 대원국의 한혈마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왕은 장건의 보고서를 읽고 한혈마를 보기를 원했다. 다시 장건이 서역으로 길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노예로 붙들리는 일이 없도록 진귀한 선물을 가득 실어 보냈는데 장건 일행은 무사히 대원국에 도착하여 이 선물들을 한혈마와 교환할 수 있었다. 수십 필의 한혈마를 눈앞에 둔 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 말들을 천마(天馬)라 명명했다. 핏빛 땀을 흘린다는 뜻의 한혈마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을 지닌 천마로 거듭난 것이다. 천마는 훗날 천리마로도 불려졌다. 하루에 천리 이상을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 만큼 체력이 강해서 유목민인 흉노의 말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흉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한 무제에게 이것은 기회였다.

둔황의 가무역사가 그려진 벽화


한껏 고무된 왕은 장건 외에 여러 사신들을 등용하여 천마와 함께 새 길을 개척해 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탐험단을 파견했는데도 성공리에 임무를 완수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역으로의 첫 경험이다 보니 긴장을 한 상태에다가 사나운 명마를 능숙하게 다룰 기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는 지리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꾸준히 업적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물론 장건이었다. 그는 빠르고 강한 명마들에 의지해 흉노들을 피해 새 길을 개척하며 탐험을 계속했다. 장건은 세상을 뜰 때까지 실크로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정보를 모아서 왕에게 보고하는 등 탐험가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임했다.

장건이 숨지고 난 후에도 무제는 계속해서 새로운 탐험단을 외지로 파견했는데 그들의 직위를 ‘박망후(博望侯)’라 칭했다. 이는 외국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안목이 넓다는 뜻인데 원래 장건의 직함이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탐험가 사절단에게 이와 같은 직함을 붙인 것은, 중국인 최초로 실크로드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 장건을 기리는 왕의 마음이었다. 길로 이름을 남기기, 제법 멋지게 영원한 명성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자료조사 / 이승호
사진 출처: 중국 양관역사자료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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