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세종대왕 듣던 그 소리 다시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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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 복원 전문가인 김현곤(73·사진)씨는 몇 해 전 서울 장충동의 수표교(水標橋)를 찾았다. 길이를 재는 도구와 옛 문헌을 손에 들고서였다. “현대와 조선시대의 척도를 정확히 비교해 보기 위해서였어요.” 음악에 관한 조선 중기의 책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나오는 악기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탓이다. 종묘제례에 쓰이는 타악기 척(戚)의 정확한 크기가 이렇게 나왔다. “처음에 문헌만 참고했을 때는 30.3㎝였죠. 조사 끝에 지금은 30.8㎝가 정확하다고 보고 있어요.”

그는 “0.5㎝ 때문에 서울을 휘젓고 다닌 나는 ‘악기 미치광이’”라며 웃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악기 제작·복원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현재 국악기 복원 업무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고향 전북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악기상에 들어가 서양 악기 제작부터 배우기 시작했죠.” 국립국악원에서 망가진 옛 악기들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수백 년 전의 정확한 소리를 찾는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이후 편종·편경 등 중요한 국악기들을 정확한 크기·재료로 되살려 냈다. “재료로 꼭 써야 하는 돌을 찾기 위해 전국의 광산을 2년 반 동안 뒤진 일도 있어요. 문헌에는 ‘경기도 남양의 돌을 써야 한다’고 돼 있는데 찾을 수 없었거든요. 결국 중국에서 그 돌을 찾았고, 지금까지 쓰고 있죠.”

세종 시대의 ‘회례연’은 당시 높은 수준에 달한 음악·춤을 볼 수 있는 궁중 연회다. 17·18일 이 연회의 재연을 위해 8개의 타악기가 복원됐다. 작은 사진 앞줄 왼쪽부터 순, 탁(鐸), 요, 탁. 뒷줄 왼쪽부터 응, 독, 상, 아. [국립국악원 제공]


김씨가 최근 복원한 것은 세종 시대의 8종류 타악기 요·탁(鐸)·응·탁(<9432>)·아·순·상·독이다. 문헌에 악기 그림과 크기, 재료, 사용법 등이 나와 있지만 실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요’라는 악기에 대해 책에는 ‘소리가 요요하게 울린다’라고 돼 있죠. 그 소리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수십 번 제작 끝에야 파이프를 통해 울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죠.”

이번에 복원한 타악기는 세종 시대 ‘회례연(會禮宴)’에 쓰였던 것들이다. 정월·동짓날에 궁중의 시무식·종무식처럼 열렸던 연회에서 이 악기들은 무희 곁에서 박자를 잡아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 키만한 대나무로 만든 ‘독’은 땅을 다지며 일정한 리듬을 잡고, 뒤집어진 종 모양의 ‘순’은 흔들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금속의 소리를 울린다. ‘응’은 절구통과 절구처럼 나무 몸체를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모두 임금 앞에서 춤추는 사람의 걸음과 몸짓이 도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악기들이다. 8개 악기를 되살리는 3개월 동안 김씨는 세종 15년(1433년)의 연회를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다.

국립국악원 서인화(46) 학예연구관은 “1433년의 회례연은 중국 음악에서 독립하려는 세종의 의지가 보인 자리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악기 대신 독자적으로 개발한 악기들도 새로 선보였다”고 이번 복원의 의미를 설명했다. “옛 악기를 되살려내면 단지 소리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도 함께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2006년 문을 연 국립국악원의 악기연구소는 현대의 과학과 옛 문헌을 결합해 이러한 악기 복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태평지악(太平之樂)-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라는 제목의 이번 공연은 17, 18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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