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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이 주도하는 기후변화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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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대기에서 수증기를 뽑아내 차갑고 깨끗한 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나왔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뉴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물 부족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비싼 비용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아프리카에서 물은 농작물과 가축, 가족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기후변화로 예기치 않은 폭풍우가 불어닥친다.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폭풍우는 강이나 우물에서 식수를 얻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물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심장과 같은 존재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물로 세탁을 하며, 농작물에 물을 대고, 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비가 많이 오면 불편한 점도 따르지만 부족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아프리카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계속된다면, 10억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다. 물 부족 현상은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1~12일 폴란드 포즈난에서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제1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다. 각국은 2009년 말까지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할 계획이다. 문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강대국들이 이 회담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강대국들이 만들어놓은 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협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들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이 돌아가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떠맡아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화로 인해 각 국가들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은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해 모잠비크와 콜롬비아, 캄보디아와 손을 잡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은 식량과 같은 생필품을 사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필리핀과 페루,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나라들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날 기후변화로 영향을 받지 않을 나라는 거의 없다. 많은 국가가 기후변화로 인해 거대한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남아프리카에서는 기온이 더욱 올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것이며,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로 인해 농작물의 수확량은 반으로 떨어질 것이며 수력발전으로 이용됐던 강에는 물방울만 뚝뚝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아프리카의 동부와 서부에서는 비가 지나치게 많이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비는 홍수와 침식활동을 일으키고 농작물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리프트밸리열병(RVF)과 같은 전염병을 일으킨다. RVF는 아프리카 산양·소·염소 등의 폐사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사람에게 감염되면 사망률이 50%에 이른다.

때때로 기후변화 회의가 학자들 탓에 복잡하게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용어를 만들어내고, 탄소 적정 가격이나 할인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배출된 온실가스는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고, 아직 그것을 막는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류의 근시안적인 생각 때문에 세계 각지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고 있고, 후손들에게도 부담을 지우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 인도와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하면서 가난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몰래 부담을 주고 있다. 물에 대한 인류의 권리는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해 있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존의 기본조건을 무시하고 속임수를 부리는 부자들이 이끄는 세상은 과연 행복한 것인가.

카밀라 툴민 세계환경개발위원회 이사
정리=김민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