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경계해야할 일본 소식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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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일보 지난달 27일자 2면엔 '김정일과 言爭 벌이다 격분,김일성 심장마비로 사망'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베이징(北京)에서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黃長燁)북한노동당비서가 일본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일본의 한 북한전문가가 전한 것을 기사화한 것이다.

북한사정에 꽤 정통한 소식통의 전언이었는데다가 김일성주석의 사망 배경은 관심을 끌기에 족했기 때문에 이를 도쿄(東京)발로 바로 보도했던 것이다.

이 기사와 관련,북한은 아주 격한 반응을 보였다.북한관영 중앙통신은 1일“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한 황당무계한 모략기사를 실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다른 것은 몰라도 민족의 운명이고 미래인 우리의 최고수뇌부를 감히 건드리려는데 대해서는 그가 누구이든,어디에 있든 보복하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위협했다.북한의 대남 전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祖平統)

도 2일 이 '도발'은“우리공화국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라고 주장하고 “도발자는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조평통 대변인 명의의 성명은 “최악의 중대모략 중상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특히 이 기사가 안기부가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것이라며 분개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27일자 기사는 일본 소식통이 밝힌 것을 현지에서 전한 것 이상도,이하도 아니다.사실 베이징에서 黃비서가 망명을 신청한 이후 일본에서는 黃비서의 도쿄체재시의 발언및 그의 망명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본 매스컴은 물론 각국 특파원들은 허다한 정보와 첩보,때로는 역정보(逆情報)로까지 의심되는 갖가지 소문들 틈에서 각자 기준에 따라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언론사가 취재.보도한 것을 일본신문이 인용.보도하고 이를 다시 한국 언론이 인용.보도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넘치는 뉴스속의 정보부재'현상이 빚은 해프닝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일본 언론의 일부 보도는 사실과 동떨어진 추측성이 주류를 이뤄 남북대결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게 할 정도다.

이런 배경엔 일본에는 黃비서 망명의'사건성(事件性)'이 더 화제가 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측면은 남북간 긴장완화를 원치 않는 일본의 의도적 요소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黃비서 망명신청후 미 정보기관이 黃비서와 베이징에서 접촉했다거나 黃비서가 미국으로 간다든지 하는 소문 유포와 보도들이 그런 부분이다.무언가 냄새가 난다는 분석이 많았다.북한이 발끈한 이번 기사도 그런 것중 하나일 수도 있다.

일본소식통이 전한 내용의 진위는 언젠가 가려지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이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기대하는 우리의 노력에 장애가 되는 일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재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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