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따내는 방법도 가지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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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가족부 이태한 보육정책관은 요즘 한 달째 제 목소리를 잃은 채 지낸다. 상임위 예산심사소위가 시작된 11월 초부터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을 붙들고 ‘보육돌봄서비스’ 예산을 설명하느라 목이 쉰 탓이다.

그는 거의 매일 담당 과장들과 함께 국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를 10번 이상 만났다는 한 보좌관은 “처음에는 한 시간 이상 열변을 토하다 돌아갔다”며 “‘알았다’는 답이 나오기 전까진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가 지키려는 예산은 임금이 100만원 안팎에 불과한 공·사립 보육교사들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고 교사 찾기가 별 따기인 농어촌 보육시설에 특별근무수당을 챙겨 주기 위한 돈 776억원이다. 그의 팀이 대부분의 상임위원과 예결위원을 접촉한 끝에 기획재정부가 대부분 삭감했던 이 예산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고스란히 증액됐다. 이 정책관은 갈라진 목소리로 “낮은 비용으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을 국회가 헤아려 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여야의 신경전이 매일 밤 12시까지 계속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주변엔 뭔가를 바라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장 흔한 풍경은 각 부처의 사업담당 실·국장이나 산하 기관장들의 읍소지만 간혹 인해전술에 나선 기관도 있다. 정규직 직원이 16명뿐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A기관은 지난달부터 기관장을 포함한 4~5명이 번갈아 가며 국회에 나와 예산 확보에 매달렸다. 직원의 3분의 1이 나선 셈이다. 문방위 소속의 한 보좌관은 “이 기관의 서로 다른 직원을 하루 세 번 마주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생활 임금’ 확보였다. 대졸 초임이 공공기관 최저 수준인 1900만원 선인 속사정 때문이다. 이 기관 관계자는 “안 그래도 낮은 임금 탓에 이직률이 높은데 경상운영비 10% 삭감 지침이 떨어져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요구 사항은 연간 인건비 1억2000만원 인상이 전부였다.

막무가내형 로비도 적지 않다. 복권기금 지원을 받는 한 장애인 단체는 2009년 지원금을 두 배로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상임위는 빡빡한 복권기금 대신 관련 예산을 편성해 국고 지원을 크게 늘렸다. 그러자 이 단체 관계자는 상임위 보좌진들에게 “지원이 이원화되면 지원금을 타내기가 어려워진다”며 “복권기금 지원을 늘려 달라”고 매달렸다. 한 보좌관은 “경상보조를 받는 민간 단체들의 지원 요청이 도를 지나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선물 공세도 여전하다. 7일 충청남도 소속 관계자는 ‘천안 호두과자’ 박스를 양손 가득 들고 국회를 찾았다. 감액 심의를 앞둔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예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전엔 각 예결위원실에 ‘성완 배’와 ‘예산 사과’, 충남 특산인 인삼 가공식품 등도 돌렸다고 한다. 한 예결위원의 보좌관은 “식사를 하자는 걸 피했더니 돈봉투를 들고 오고 이마저 거절했더니 샌드위치를 사온 기관도 있었다”며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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