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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유지'로 가는 중국·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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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20일 천수이볜(陳水篇) 대만 총통의 취임식이 열렸다. 陳총통은 취임연설에서 자신의 두번째 임기인 향후 4년간의 국정운영 방침을 발표했다.

총통선거 혼란의 여파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투표 전날 발생한 陳총통 총격사건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陳총통이 선거에서 야당의 롄잔(連戰) 후보를 불과 3만표 차로 따돌린 것도 그렇고, 무효표가 33만7000표나 된 것도 부자연스럽다. 재검표 결과 판독이 어려운 '의문표'가 4만표 가까이 나왔다. 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부분과 관련, 추가심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0일 陳총통은 이미 정식 총통에 취임했다. 이를 번복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이미 출범했으며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향후 정국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다.

총통선거에서 패한 야당 제1당인 국민당과 제2당 친민(親民)당은 올 여름 합당을 계획하고 있다. 두 당이 합치면 입법원 225의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집권 민진당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이끄는 '대만단결연맹'의 의석을 더해도 약 100석에 불과해 야당연합에 미치지 못한다. 오는 12월 실시되는 입법원 선거를 앞두고 정계재편과 이에 따른 활발한 정치적 움직임이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대만 간 양안(兩岸)관계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이를 점치는 열쇠를 총통취임 연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陳총통은 향후 시정(施政)방침으로 대만단결.양안안정.사회안정.경제번영의 네 가지를 들었다.

대만단결과 사회안정은 총통 선거로 분열된 사회를 수습하기 위한 것이다. 총통선거의 최대 쟁점은 대만독립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대만독립과 대만의 주체성을 강조한 陳총통과, 중국과의 통일에 호의적인 입장을 나타낸 連후보의 쟁점싸움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이번 선거로 대만사회는 둘로 분열됐다. 그리고 陳총통은 이제 분열된 대만을 하나로 단결시켜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둔 陳총통은 선거기간 중반부터 대만독립을 비롯한 자신의 급진적인 공약내용을 온건한 내용으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陳총통은 4년 전 취임연설에서 '5개의 NO(독립 불선포, 국호 불변경 등)'를 선언했다. 陳 총통은 이번 취임선서에서 '5개의 노(NO)'를 또다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4년간 이 원칙을 바꾸지 않았고, 앞으로 4년 동안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陳총통은 또 선거 전부터 주장해온 대만 신헌법 제정을 오는 2008년 임기만료 전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신헌법에서 국가주권과 영토.통일 독립 등의 쟁점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2006년 실시되는 신헌법 준비를 위한 주민투표 문제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대만 내 독립 움직임을 경계하는 중국을 배려한 조치다.

한편 양안 간 교류에서는 통상(通商).통항(通航).통우(通郵)의 '3통(通)'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양측의 대화재개를 촉구하며 '양안 평화발전위원회' 설치와 '양안 평화발전강령'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안의 배경에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신지도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 陳총통은 취임연설에서 "중국의 신지도부가 안정적인 발전을 중시해 인민의 복지를 강조하고, 외교면에서는 평화를 강조하고 있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陳총통은 또 미국과 일본을 자유.민주.인권.평화의 '가치동맹'이라고 강조했다. 미.일 등 국제사회의 지지 없이는 대만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 대만관계에 관한 陳총통의 주장은 현실주의에 기초한 '현실유지'로 돌아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만독립을 내세운 그의 과격한 공약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陳총통의 계산은 적중했다. 그간 陳총통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중국 당국도 표면적으로는 비난하면서도 내심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도 취임연설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지난해부터 악화된 양안관계도 이제 안정을 되찾을 분위기다.

고쿠분 료세이 일본 게이오대 동아시아硏 소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