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투쟁의 시작 꿈틀대는 常務委 7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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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권력투쟁은 이른바'당 중앙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공산당 7인 중앙상무위원회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권력내부의 갈등과 투쟁은 그러므로 이들 7인의 실타래처럼 얽힌 인간관계를 통해 예측해볼 수 있다.

권력서열 1,2위의 장쩌민(江澤民)주석과 리펑(李鵬)총리는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84년 江주석은 국무원 전자진흥영도소조(小組) 부조장으로서 당시 조장이었던 李총리를 보좌했다.

지난 89년 6.4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江주석은 당총서기에 임명돼 李총리를 추월하고 제1인자 자리에 올랐다.이 때부터 두사람은 갈등.대립관계에 빠진다.

서열 3위 차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지난 40년대 상하이(上海)에서 학생구국운동에 나섰을 때 江주석을 만났다.

두살 연상인 喬는 이 때 江주석의 상급자 지위에 있었으나 현재는 역전돼 있는 상태다.

사법과 공안 쪽에 인맥이 두텁고 당지도부의 사생활등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비밀경찰 총수를 장기간 역임했다.서열4위의 리루이환(李瑞環.62)은 목수 출신으로 톈진(天津)시장을 거쳐 전국 정협(政協)주석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개혁.개

방에 적극 앞장섰으나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뚜렷이 표명치 않는 신중파다.

경제전담의 주룽지(朱鎔基.68)부총리는 江주석 후임으로 89년 상하이시 당위 서기직을 맡은 인연이 있다.개혁 추진 속도를 놓고 李총리와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朱가 곤경에 처할 때 喬위원장이 朱를 지지,두 사람의 관계는 비교적 좋

은 편이다.

서열 6,7위의 류화칭(劉華淸.80)중앙군사위 부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54)중앙서기처서기는 鄧이 직접 정치국 상무위원에 기용한 인물이다. 劉는 江주석이 군부를 장악하는데 협조해왔으나 고령으로 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4세대 지도자의 선두로 평가받는 胡는 공산주의청년단 서기와 티베트자치구 성위(省委)서기가 될 때 喬위원장의 측면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베이징=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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