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에서 소문잔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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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 대정부질문이 시작되면서 한보의혹과 관련된 폭로와 질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검찰의 수사발표가 있었으나 국민적인 의혹이 계속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이러한 추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그러나 그 폭로하는 내용을 과

연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다.질문이나 폭로내용이“시중에 이러 저러한 소문이 나도는데 이게 사실이냐”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번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대통령 차남 현철(賢哲)씨와 관련한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국민회의는 증거를 밝히라는 여당의 요구에 대해 국회가 열리면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그러나 국회 대표연

설에서도,또 대정부질문에서도 이러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계속 소문과 설(說)만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철저하게 막후와 비선(비線)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이번과 같은 권력형 비리사건을 육하(六何)원칙에 맞춰 폭로하긴 어려울지 모른다.야당으로선 그런 명백한 증거수집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황과 개연성에 근거한 질문도 할 수는 있다

고 본다.

국회의원에게 국회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은 권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그러나 이 국회발언이 시장거리나 술자리에서 회자되는 뜬소문들을 들춰내는 정도라면 면책특권(免責特權)의 본래 의미는

사라지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쟁(政爭)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만다.이럴 경우 법적으로는 면책될지 몰라도 그 정치적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

야당의원도 소문만 전달해선 안되고 이를 검증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또 밝힐 것과 밝히지 않을 것을 선별하는 분별력도 있어야 한다.그렇지 않고는 국회가 면책특권의 그늘 밑에서 루머만 확대 재생산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이로 인한 불신의 확대는 정권 차원이 아닌 나라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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