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챙강 챙강.

“빈병이나 신문지 사려!”

우풍은 휴우,한숨을 쉬고 그 가위질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근데 가위질 소리가 점점 가까워오는 것이 아닌가.

“빈병이나 신문지 없어?”

고물장수가 바깥에서 망을 보고 있는 용태에게 묻고 있음에 틀림없었다.우풍은 용태가 어떻게 대답하나 자못 긴장되었다.

“난 이 동네 안 살아요.”

그냥 없다고만 대답하면 될 걸 왜 저런 소리까지 하나.우풍은 은근히 짜증이 났다.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고물장수가 증인이 될지도 모르는데,그냥 없다고 하면 용태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 아닌가.

“이 동네에 안 살면서 왜 서성거리고 있어?”

이미 가위질 소리는 멈춰 있었다.

“남이야 서성거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용태답게 불끈 화를 내었다.우풍이 발끝걸음으로 소리를 죽여 방을 나와서 현관문을 밀고 몸을 웅크린 채 철문에 바짝 붙어섰다.여차하면 철문을 열고 나가 용태와 함께 고물장수를 두들겨 패고 달아나야 할 것이었다.

“너,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말버릇이 어때서?가만 있는 사람한테 먼저 시비를 건 게 누군데?”

“누가 시비를 걸어?빈병이나 신문지 없느냐고 물은 게 시비야?”

“왜 여기서 서성거리고 있느냐고 따졌잖아?”

“그래 따졌다,이놈아.네놈 꼴이 꼭 좀도둑 같아서.그렇잖으면 왜 이런 시간에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이러고 있어?”

“아가리가 찢어졌다고 함부로 말을 흘리면 안 되지.”

용태가 거드름을 피우며 고물장수 약을 올렸다.

“이노무 새끼,이 가위로 콱!”

챙강 챙강.

고물장수가 다시 가위질을 해대며 용태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모양이었다.우풍이 철문 따는 장치로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철거덕.

가위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퍽 퍽,주먹이 면상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그와 동시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창문 유리창을 때렸다.우풍이 잽싸게 철문을 밀고 골목으로 나가 고물장수를 걷어차고 있는 용태와 합세하였다.

“아이쿠,이놈들이 사람 죽이네.사람 살려!”

고물장수가 쓰러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야,튀자!동네 사람들 나올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