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 공적자금 투입의 그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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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29면

미국의 거대 금융 복합그룹 씨티가 또 공적자금을 받았다. 새로운 자본금 200억 달러 투입과 함께 3060억 달러에 이르는 미 정부 보증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부실 자산이 추가로 얼마나 발생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전체 자산 2조1000억 달러 가운데 부실 자산이 없었다면 미 국민의 돈을 추가로 지원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백도 없이 거액을 지원받았다.

단지 미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은 미 정부가 200억 달러를 투입해 씨티그룹의 우선주를 사들이고, 부실 자산 3060억 달러에 대해 지급을 보증한다는 것뿐이다.

미국 법에 따르면 어떤 금융회사가 분기 결산 전에 대손충당금을 쌓기로 했다면 나흘 안에 투자자에게 알려야 한다. 씨티는 지난달 29일 미 정부와 의논해 추가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법적으로 그 이유를 상세히 알려야 할 때가 지난 셈이다. 씨티 경영진은 아직 손실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해 자산이 쓰레기로 변했는지,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서둘러 발표했어야 했다.

아직까지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공개할 뜻이 없음을 보여 준다.

결국 미 국민은 씨티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돈이 이 거대한 금융회사를 구제하는 데 쓰이는 걸 구경하는 신세인 셈이다.

씨티가 발표하지 않아도 속내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씨티는 정부가 보증한 자산 가운데 290억 달러어치를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손실 처리한 자산과 합하면 1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다. 대부분 업무용 부동산과 주택 관련 자산에 투자된 것들이다.

물론 씨티에 추가 자금을 지원해 미 국민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이 얻는 이익이 있기는 하다. 거대 금융회사의 도산을 막아 금융 패닉의 재연을 예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유럽연합(EU) 지역에서도 적잖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 위기의 다급함이 핑계다. 일단 급박한 위기 순간이니 정상적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라는 얘기다.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미 재무부가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철저하게 감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금융감독 당국과 검찰이 나서 금융회사 경영진이 잘못한 것이 없는지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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