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향수 과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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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에게 어느날 한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무슨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가.먼로의 대답은 간단했다.샤넬 넘버 5.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향수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러시아 출신 조향사(調香師) 에르네스트 보는 샤넬을 위해 향수를 만들었다.그는 합성향료 알데히드를 사용,10가지 향수를 만들었다.1번에서 5번,20

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붙였다.이중에서 가장 샤넬의 마음에 든 것이 5번이다.1922년 탄생한 샤넬 넘버 5는 지금도 세계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향수의 역사는 오래다.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몸의 부분에 따라 다른 향수를 뿌렸다.자연 그대로를 좋아한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얼굴화장은 피했으나 향료만은 좋아해 머리.피부.옷에 각각 다른 향료를 뿌렸다.로마인들은 전쟁에 나갈 때도

향료를 바르고 나갔다.중세시대 향료는 퇴폐와 방탕의 상징으로 금지됐으나,11세기 십자군원정때 유럽에 다시 향료가 들어왔다.

1370년 헝가리 왕비 엘리자베드는 최초의 알콜향수인 '헝가리 워터'를 개발해냈다.그때까지 향수라면 향료나 향유를 가리켰으나,헝가리 워터는 꽃잎에 알콜을 부어 증류시킨 것이다.당시 80세였던 왕비가 이 향수를 사용하자 폴란드 왕이

구혼했다는 얘기가 있다.

화학적으로 향수를 합성하는 합성향료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1920년대 들어 분석.합성기술의 진보가 두드러져 동.식물 방향(芳香)화합물은 물론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향료화합물까지 합성해냈다.현재 존재하는 향료는 3천가지가

넘는다.조향사는 이것들을 잘 섞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낸다.향수 하나를 만드는데는 보통 수십 또는 1백수십가지의 조향 소재가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향료를 애용해 왔으나 알콜향수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향수는 대부분 수입품이다.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향수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다.지난해 향수 수입액은 2억2천만달러로 전년(前年)에 비해 배증(倍增

)했다.특히 젊은층에서 향수 소비가 늘어 생일.크리스마스 선물로 외제 향수가 인기라고 한다.우리사회의 큰 병폐인 과소비가 향수에까지 이른데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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