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사망 새벽 1시2분 대특종 急報 - 중앙일보 특파원 취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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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망과 관련한 중앙일보의 보도는 세계적 특종이었다.

중앙일보는 중국의 관영 신화(新華)통신과 CCTV가 공식적으로 鄧의 사망을 발표한 오전3시45분(한국시간)보다 훨씬 앞선 오전1시5분 이미 鄧의 사망사실을 확인했다.

95년 7월 김일성(金日成) 사망직후부터 다음의 세계적 특종은 鄧의 죽음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대비를 게을리 해오지 않았던 결과다.

鄧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중앙일보가 포착한 것은 19일 낮 1시.

문일현(文日鉉).이양수(李陽壽)특파원과 점심을 함께 하던 베이징(北京)의 한 고위 소식통이“鄧의 상태가 어떻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다“아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두 특파원은 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 망명사건 취재로 분주한 와중에도 鄧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베이징의 중국 친구들에게 두루 전화를 걸어“혹시 큰 일이 생기면 가능한한 빨리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부탁했다.

저녁을 먹고 黃비서가 머무르고 있는 한국대사관 영사부 주변을 돌아보고 나온 20일 오전1시 2분 돌연 文특파원이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면서 귀에 익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친구)의 음성이 들렸다.그는 매우 비통한 음성으로“선생님이

어제 저녁9시8분(한국시간 10시8분) 세상을 떠나셨다”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文특파원은 당시를“12억 중국인을 이끌어온 동방의 별이 떨어진 비보를 처음 전해듣는 순간이었지만 중요한 뉴스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는 기자로선 온 몸에 전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이후 文특파원은 핸드폰을 켜들고

서울 본사로 이 사실을 알렸다.

오전1시5분의 일이었다.

당장 본사 편집국에 비상이 걸렸고 국제부는 해외 취재망을 총가동시키면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배달되는 이른바 메인 판(版)인 42판을 찍고있던 윤전기를 세웠다.이때가 1시25분.

鄧사망 1보를 알린 후 즉각 젠궈먼(建國門) 외교단지에 위치한 특파원 사무실로 돌아온 文.李특파원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을 뒤적였으나 鄧의 사망에 관한 아무런 소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본사에서도 인터넷은 물론이고 CNN등 세계 각국의 방송.통신등을 특파원망과 국제부의 TV모니터를 통해 스크린했으나 중국 TV는 물론 어떠한 매체도 鄧의 사망에 관한 일체의 보도를 내놓지않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신문 인쇄를 중단,발송이 늦어지자 전국 곳곳의 본사 보급소와 발송차량등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문의를 빗발치듯 해왔다.

하지만 본사에서는 당시 전세계 어느 언론보다 먼저 특종을 확인한 鄧의 사망 소식을 만의 하나 새어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중요한 뉴스 때문에 그렇다”는 모호한 답변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文특파원이 오전1시33분 또다른 중국 친구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鄧의 일가와 비교적 가까운 이 친구는“어젯밤 9시쯤 일이 있었다.아마 곧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니 잘 지켜보는게 좋겠다”는 것이었다.鄧사망이 더욱 분명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간 본사에서는 鄧의 사망에 대한 특집기사를 분주히 제작해나갔다.전세계 어느나라 언론도 鄧의 사망에 관한 보도를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였다.

일부에서는 조심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국제부는 이미 베이징은 물론이고 홍콩.대만등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온 소식을 종합,더이상 의심이 필요치 않은 상황임을 확신했다.

제작이 한창 진행중이던 오전2시15분쯤 CNN은“鄧의 사망설이 돌고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 계속 알아보고 있다”는 뉴스를 전했다.

2시30분 모든 기사가 공무국으로 넘겨지고 오전3시 한동안 멈춰섰던 윤전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고 돌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鄧小平 사망'이라는 제목을 단 신문이 중앙일보에서 인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중앙일보 해외 취재망이 스크린하던 어떤 매체도 鄧의 사망 소식에 관한 뉴스를 전하지 않아 편집국,특히 국제부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홍콩주재 특파원이 오전2시18분과 3시20분 홍콩의 케이블TV인 CTN과 광둥(廣東)어 방송인 펄TV가 긴급뉴스로 鄧의 사망을 보도했다고 알려왔다.

2분후인 3시22분 AP.AFP통신도 홍콩의 CTN 방송을 인용,鄧의 사망을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3시45분 국내 주요 뉴스 예고를 통해 鄧의 장례위원회 명단을 송고할 것임을 타전,사실상 그가 사망했음을 공식 확인했다.

중앙일보 편집국에 환호성이 울리는 가운데 CNN도 긴급뉴스로 鄧의 사망을 보도하기 시작했다.본사가 鄧의 사망을 확인한 2시간40분 뒤의 보도였지만 CNN은 이때도 중앙일보가 이미 보도한 鄧의 사망시간(19일 오후10시8분)을 정확

히 전하지는 못했다.

이같은 세계적 특종은 통신사가 독차지했던게 보통이나 이례적으로 신문이 특종을 하게 된 것이다.같은 시간 본지 일본총국은“鄧의 사망을 다룬 20일자 일본 조간신문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해 왔다.“아사히(朝日)신문만이 1면 톱기사로

'등소평 사망인가-외무성이 수상에 보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을뿐”이라고 전해왔다.

특종기사가 실린 신문이 오전3시부터 찍혀나오기 시작했고 서울을 비롯한 대구.광주등 대도시 42판 배달지역에 90% 배달이 완료됐다.다시 보다 완벽한 기사를 실은 새로운 50판이 4대문안 서울중심가 독자의 손에 안겨졌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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