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있다’자신감 넣었더니 점보스 수직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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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80년대 배구’ 운운했던 그들은 요즘 유구무언이다. 대한항공은 V-리그 개막 후 4전 전승이다. LIG손해보험(11월 23일)부터 현대캐피탈(25일), 삼성화재(12월 3일)를 연파해 단독 선두다. 모두 풀세트 한 번 없는 완승이다.

1998년 고려증권 해체와 함께 지휘봉을 놓았던 진준택 감독이 대한항공 사령탑으로 복귀, 프로배구 코트를 흔들고 있다. 그는 ‘80년대 배구’라는 세간의 평가를 “옛날이나 요즘이나 배구는 같다”고 일축했다. [인천=이호형 기자]


#자신감을 불어넣다

대한항공 라이트 공격수 김학민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요즘 ‘좋은 감독님 오래 모시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한다”고 팀 분위기를 전했다. 선수들은 진 감독 내정 당시 겁부터 먹었다. 경험상 ‘조직력’ ‘기본기’를 강조하는 감독은 엄격하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진 감독을 접한 뒤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상과 달리 진 감독은 무서운 스타일이 아니다. 진 감독의 설명은 이렇다. “나도 선수생활을 해봤잖아요. 말이 많으면 잔소리로 느껴져요. 말을 아껴야죠.”

진 감독이 파악한 대한항공의 문제는 조직력도 기본기도 아니었다. 선수들이 풀 죽어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는 다 받아 놓고 성적은 왜 그 모양이냐”는 핀잔을 수년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들을 꾸짖으면 사기가 더 떨어집니다. 기를 살리려고 늘 ‘이길 수 있다’고 얘기해 줬습니다.” 대한항공이 컵대회 결승에 못 오르자 “대한항공이 그 정도지”라는 조롱이 나왔다. 진 감독은 “너희는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 그러고도 진 건 감독 책임”이라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진 감독은 ‘답’을 던져 주는 대신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했다. 컵대회 때만 해도 선수들은 실수하거나 위기에 봉착하면 진 감독 눈치를 살폈다. 이젠 스스로 헤쳐간다. 고려증권 시절 진 감독 밑에서 선수로 뛰었던 이경석 경기대 감독은 “예전 고려증권이 강했던 건 선수들끼리 해결하는 능력 덕분이었는데 대한항공에서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순리대로 풀어가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올 시즌 선수 구성에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주전선수의 기용이 좀 바뀌었다. 지난 시즌까지 라이트(보비)였던 외국인 선수를 레프트(칼라)로 바꿨다. 진 감독은 “경기 때 1명만 기용하는 라이트가 우리 팀엔 이미 2명(김학민·신영수)이나 있다. 경기 때 2명을 투입하는 레프트를 데려오는 게 효율적이라 바꿨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보비를 쓰기 위해 김학민을 레프트로 돌리는 ‘편법’을 썼다. 제 자리를 찾은 김학민은 팀 내 득점 1위다.

행운도 따랐다. 칼라는 당초 다른 선수를 염두에 두고 본 경기 비디오에서 우연히 눈에 발견, 영입에 성공했다. 진 감독 부임 후 구단의 전용체육관이 생겼다. 대한항공은 지난해까지 인하대 체육관을 빌려 쓰는 바람에 야간훈련이 불가능했다. 전용체육관 덕분에 훈련량이 늘었고, 훈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장혜수 기자 ,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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