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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밥할머니의 미담이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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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①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면서 오랜 세월 꾸준히 돈을 모았다.

②생업은 먹는 장사이고, 영업 장소는 대학 근방이다.

③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살아왔다.

④못 배웠다는 한을 가슴에 품고 있다.

⑤그래서 전 재산을 대학이나 대학병원에 선뜻 기부했다.

짐작했겠지만 답은 ‘김밥 할머니’다. 굳이 김밥이 아니라도 좋다. 국밥집 할머니도 정답이고, 삯바느질 할매라 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이런 공통점을 갖춘 할머니가 참 많다는 사실이다.

 고마운 일이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들이지만, 나는 왠지 마뜩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슬며시 부아가 난다. 왜 이 할머니들이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대표 선수여야 하는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며 사는 사람들, 번듯한 대형 점포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남부럽지 않은 반려자도 있는 사람들, 많이 배워 학식이 깊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말이다.

그동안 언론에 소개된 김밥 할머니들의 면면을 간추려 보자. 고(故) 이복순 할머니는 평생 김밥 팔고 여관을 운영해 모은 50억원대 재산을 충남대에 기증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우동 장사를 하던 김복순 할머니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나면서 2억8000만원대 재산을 경희대에 기증했고, 시신도 대학병원에 내놓았다. 욕 잘하기로 유명하던 진해 ‘아귀찜 할매’도 지난해에 1억원을 선뜻 던졌다. 윤정혜 할머니는 옷감 가게를 운영해 모은 10억여원을 서울가톨릭대에, 이명기 할머니는 30년간 방직공장에서 일해 마련한 아파트(2억500만원)를 동국대에 거저 넘겼다.

자기 앞가림에 급급해 살아오던 일반인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례는 더 있다. 올해 1월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만원을 기부한 84세의 김춘희 할머니.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정부에서 받는 월 44만5000원의 생계비와 경로수당을 아끼고 아껴 기부금을 마련했다. 일본군 성노예(종군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황금자 할머니가 기증한 장학금은 또 어떻게 모은 돈이겠는가.

물론 김밥할머니 등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이에 그들보다 형편이 나은 이들이 나 몰라라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독 눈에 띄는, 그래서 ‘기삿거리가 되는’ 사안이었기에 언론들도 김밥할머니가 출현할 때마다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기부를 생활화한 분들이 적지 않다. 각종 사회단체를 통해 불우이웃 돕기를 하고, 아프리카·중앙아시아·남미의 가난한 아이들과 인연을 맺어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방송사에서 자선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하면 저절로 콧등이 시큰해져 휴대전화로 1000원, 2000원씩 보내게 된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 김밥할머니의 등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다. 그러면서 어린 문근영이 남몰래 선행을 베풀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돈 한 푼 안 드는(!) 악플이나 달기에 바쁘다. 며칠 전 아름다운재단이 발표한 ‘2007 한국인의 기부 지수’를 보면 지난해에 기부를 한 한국인은 55.0%로 2005년도에 비해 13.6%포인트 줄어들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액은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기업 아닌 개인 기부(약 40%) 비율이 너무 적다.

부쩍 추워진 날씨. 그나마 직장을 다니거나 많든 적든 고정 수입이 있는 평범한 중산층이 나서야 한다. 왜 하필 삼성·현대 아니면 김밥장수·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여야 하는가. 그 중간은 다 어디 갔는가. 미국의 급여자동공제제도(payroll system)도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도입할 만하다. 김밥할머니가 평생을 고생해 모은 돈은 안락한 노후생활에 쓰게 하자. 앞으로도 김밥할머니의 기부금 쾌척이 화제가 된다면, 난 정말 싫다.

노재현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