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북한.대만수교 저지 주도-중국內 親北인사에 들어본 최근 行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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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소식을 접한 김정일(金正日)은 몹시 격분,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이미 黃비서와 가까운 인사들이 대거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黃비서와 가깝게 지낸 인사와 최근 북한을 다녀온 베이징(北京)과 옌볜(延邊)의 인사들이 전한 소식이다.

북한노동당의 고위 핵심인사들과 막역한 이들 인사들은 자기들의 신분이 노출될 경우 대북(對北)접촉이 어렵다면서 익명을 조건으로 증언했다.

◇黃비서의 개혁행보=그를 북한에서 만났던 인사들은 그가 개혁정책을 앞세워 보수강경세력들과 여러차례 충돌했다고 전했다.

50년대부터 김일성(金日成)을 수행하면서 중국측과 교분을 널리 쌓아온 黃비서는 한.중 수교이후 대만과의 국교수립을 주장하는 강경파에 맞섰다.

강경파들은 보복조처로 대만 수교론을 들고 나왔으나 黃비서가 결사적으로 저지했고 결국 김정일도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의 연장선에서 대만의 핵폐기물 반입도 중국관계를 고려해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또 16일의 김정일 생일잔치에 조총련에서 예년과 같이 대표단을 구성해 성대하게 치르려 하는 것을 저지했다고 이들은 전했다.“나라 사정이 어려운데 생일잔치를 크게 할 경황이 없다”는게 이유였다.

96년 한국의 4.11총선 직전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진입 진상을 묻자 黃비서는“가슴을 치며 통탄합니다.가슴을 치며 통탄합니다”고 되풀이하며“통전부 사람들도 통분해 합니다”고 했다.

북한지배층을 최대강경세력인 군부,중도의 통전부,그리고 黃비서등 개혁주의 세력으로 3분하면 초강경의 중추인 김정일이 직접 군부에 명령해 일으켰다는 뜻이다.그는 지난해 3월 평양에 고려학회분회를 조직,남북한 학술교류 확대에 나섰으나 보수강경파인 대남총책 김용순(金容淳)비서의 방해로 별다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黃비서 주변의 개혁파=黃비서와 가까운 개혁인사들은 대체로 김일성대 출신의 핵심엘리트로서 90년대 초부터 20여개 자본주의 국가를 여행하며 경제정책및 정치제도.사상.철학등을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개혁파들은 북한의 체제개혁과 자본주의 연구,그 중에서도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지극히 높은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黃비서의 개혁파는 지난해 상반기 농업전문가들과 동행해 현지조사를 하며'농업분조계약제'를 도입,적극 추진했다고 당시 이들과 동행했다는 또다른 인사가 밝혔다.농업분조계약제는 책임생산량 이상은 경작자가 자유 처분할 수 있는 제도로 중국도 70년대말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 농업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黃비서는 1주일에 한두차례 대학원생이나 주위 사람들과 함께 중국의 개방.개혁정책등을 주제로 장시간 토론회를 갖고 개혁확산에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입지는 지난해 중반이후 급격히 좁아졌다고 한다.黃비서 면접자들은 한국당국의 대북 강경정책도 개혁파의 입지를 좁히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黃비서의 망명=黃비서의 평양→베이징→도쿄(東京)→베이징 행로에 앞서 한 핵심인사가 하루씩 앞서 일정을 관리했다.黃비서와 인연이 매우 깊은 인사이나 국적은 그의 신변보호상 밝힐 수 없다는 증언자의 요청사항이다.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이 핵심인사를 만났다는 한 증언자는“그는 중국과 일본의 사전 분위기 탐지등 黃비서 망명을 적극 도와줬다”고 16일 밝혔다. [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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