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KBS도 수긍한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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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봉수 정책기획부 기자

중앙일보가 감사원의 KBS 특감 결과를 단독 보도한 지난 20일 KBS 직원이라고 밝힌 남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폭로성 기사가 나간 뒤엔 관계자들의 비난과 항의가 종종 있었던 터라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웬걸. 보도내용에 수긍하고 격려하는 전화였다.

그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며 "문제점에 대해 원인과 대안을 조목조목 제시하는 감사원의 달라진 감사 방식에 할 말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직원들도 이번 감사가 대체로 공정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KBS의 방만한 경영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속속들이 들춰낸 이번 특감은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도입한 '시스템 감사'의 첫 작품이었다. 전윤철(田允喆)감사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주문한 이 방식은 피감기관의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원인진단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불시에 현장을 덮쳐 비위를 파헤치는 과거 방식과는 접근부터 다르다. 그런 방법으로는 조직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게 田원장의 판단이다.

이번 감사는 여러 차례에 걸친 감사원의 지적이 "왜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에서 시작됐다. 예컨대 1999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지역방송국 구조 개선을 권고했는데도 KBS가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제 기능을 못하는 KBS의 경영 및 감독체계 탓이라고 판단되자 지배구조와 감독 기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모두 24명의 감사요원이 현장 감사에 나가기 전 한달여에 걸쳐 KBS의 경영 전반을 철저히 공부했다. 방송.법률.경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도 구했다. NHK.BBC 등 외국 공영방송들을 비교 분석한 것은 물론이다.

이같이 철저히 준비했으니 감사관들과 KBS 직원들 간에 시비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경영 개선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고 한 감사관은 전했다.

감사원의 새로운 시도가 공직자들의 비리 근절과 올바른 정책 대안 제시의 효과적 수단이 되기 바란다. KBS도 이번만큼은 지적 내용을 제대로 실천해 거듭나길 기대한다.

임봉수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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