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대중교통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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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끈기
멀리 그가 온다.
30분 넘게 기다렸다.
애인도 이만큼 기다리진 않았다.
반갑기도 하고 화도 난다.

#결정력
조준을 잘해야 한다.
어디 설지 아무도 모른다.
표지판 아래서 기다려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뛰어난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그가 서는 지점을 찾아라.

#순발력
꽉 찼다.
'타는 문'이 안 열린다.
찻길로 뛰어나가 창문으로
기사에게 교통카드를 건네고
다시 반대편으로 뛰어가
'내리는 문'으로 탄다.
옆구리가 터지는
우리 동네 마을버스.

#체력
흔들림 속에서 자리 찾아가기,
양다리에 힘주고 중심 잡기,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리기,
사생결단으로 돌파해
허둥지둥 내리기.

#초연함
못 내려서 발 동동 구르다
"왜 빨리 안 내렸느냐"는 면박에도
다시 세워주면 다행.
요금을 못 읽는 건 기계인데
"똑바로 못하느냐"고
꾸지람들어도 못 들은 척.
콘서트장 같은 라디오 볼륨도
안 들리는 척.

#결론
'우아하게'버스 타기 힘든 서울
끈기.결정력.순발력에
체력과 초연함은
축구선수의 자질이 아니라
버스 승객의 필수 덕목.

*7월 1일 서울시가 버스 노선과 요금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대중교통 혁명'을 시행한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싼'요금이 오른 만큼 '선진국 같은' 서비스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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