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政표류 이래도 되나-한보사태 이후 官街손놓고 눈치보기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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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보'파장이 확대되면서 국정 전반의 표류현상이 두드러져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의당 정부가 나서 경위를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안마저 관계자들은 남의 일 보듯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각 부처는 대부분 일손을 놓은채 사태추 이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중요한 국가정책이나 사업조차 사실상 사태 종결 이후로 추진이 미뤄지고 있다.
…현직 국무위원인 김우석(金佑錫)내무장관의 검찰 출두 소식이전해진 12일 총리실.총무처 공무원들은 충격받은 모습으로 다른부처 동료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다음엔 누구냐,그쪽은 조용하냐”며 수사 향방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들.
총리실의 한 직원은“요즘 사무실에서는 온통 한보 얘기밖에 없다.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정책 운용의 주축인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재정경제원부터 자신들이 결정한 한보부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당초 1월말로 예정됐던 공기업 경영혁신 방안의 경우 아직 청와대에 보고도 못했다.한보사태 관련 중소기업.금융시장 대 책을 제외하고는 전반적 업무추진이 미뤄진 상태.
한동안 급진전하던 한일그룹의 우성 인수 문제도 마지막 매듭을책임있게 처리해줄 정부나 당국이 움직이지 않아 정지됐다.답답해진 한일그룹 관계자들 사이에는“갑자기 무정부상태에 빠진 것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의 경색현상을 풀기 위해 재경원과 한국은행이 자금지원 강화를 여러차례 지시했으나 일선 금융기관 창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은행이나 종금사들은 돈이 남아돌아도 부실대출에 대한 책임추궁을 우려한 나머지 대출을 꺼려해 금리는 떨어지는데도 기업들은 아우성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제부처들이 뒷전에 물러나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전해지자 뒤늦게 금융경색 대책을 내놓는등움직이는 시늉을 하고 있으나 적극적인 업무추진 의지는 느껴지지않는다. 재경원이 지나치게 정치권과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정책 대응을 늦게 하는 바람에 혼선을 가중시키고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여당 중심부에서는 물론 재경원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설 연휴 마지막날인 9일 오후 재경원 실무진에선 연초에 발표한 경제정책방향 수준의 대책을 보고했는데 부총리가“사태를 너무안이하게 보는 것같다”고 지적해 중소기업 부도 방지를 위한 경영안정자금 지원등 부양성 조치가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소환대상자로 박재윤(朴在潤)전장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통상산업부의 경우 논란의 초점이 된 코렉스공법과 한보의 시베리아가스전 개발사업등에 관해 국회 개회에 대비한 자료를 챙기느라 관련부서 직원들이 밤샘작업하는 외에는 정상 적 업무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같은 상황은 대부분의 부처가 마찬가지로 건설교통부도 직원들이 소관업무중 한보관련 사항등을 점검하느라 막상 주요현안등은 미뤄놓은 상태.
노동계 파업의 한 고비를 넘기고 새 노동법 시행 준비에 분주한 노동부 관계자들은“3월부터 시행될 새 노동법 마련이 정치권한파로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며“이래저래 노동법 개정은 정치권의 영향으로 난파선 신세”라고 걱정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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