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서울살이 '서울의사회.경제지도'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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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입춘(立春)이 지났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셸리의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는 시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기다. 조금 있으면 처녀 가슴에는 이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것이다. 결혼 적령기인 23세 아가씨는 서울 하늘 어느 아래에서 번듯한 신랑감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아직 애인이 없다면 20대 후반 남성들이 많이 사는 대학촌 주변을 가보자. 신촌이나 신림동, 그리고 사근동 주위에는 대학졸업후 직장에 막 들어간 총각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또한 가리봉동·성수동등 공업지역에도 건실한 남성들이 몰려 산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은 신혼부부는 어디에 신방을 차리는 것이 좋을까. 비교적 싸고 그럴듯한 셋방이 많은 곳을 찾는다면 외곽지역으로 나가자. 면목동·천호동·명일동·화곡동·응암동등에는 다가구·다세대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여기 강병기(구미전문대 학장)연구실이 펴낸 ‘서울의 사회·경제 지도’(박영률출판사刊)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5%가 몰려 사는 서울사람들의 모듬살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체 5권 가운데 인구편을 다룬 1권이 이번주 먼저 출간됐다. 가구·주택·산업·일상생활·땅값·시설물·정치성향등을 컬러지도로 나타낸 나머지 4권도 4월말까지 마무리된다. 90년 각종 정보를 컴퓨터로 수집·저장·분석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도입하며 기초작업에 착수, 지도제작까지 7년여가 소요됐다.

현재 한양대 구내에 위치한 연구실 규모는 5평 내외. 그동안 학부·대학원학생 30여명이 짬짬이 이 일에 매달렸다. PC는 8대. 작은 공간 여기저기에 학생들이 시험삼아 출력한 지도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번 지도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공룡처럼 비대해져 전문가조차 간파하기 힘든 서울의 사람살이를 지도로 알기 쉽게 만들었다는 사실. 방대한 통계수치의 나열에 질린 사람들에게 거대도시 서울의 구석구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특정지역의 현황을 지도로 재현한 경우로는 국내 첫 시도다.

5권까지 동원된 지도는 모두 8백여장. 인구를 분석한 1권에도 1백80여장이 실려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지도를 들여다보면 서울시의 지역별 색깔과 특성이 드러난다. 예컨대 1권에는 60년부터 90년까지의 인구변동, 연령별(5살단위)·성별 인구수와 비율및 밀도, 초·중·고·대학교 재학인구및 학력인구가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연령별로 집중 거주지가 대별된다는 점. 30대는 화곡동·상계동등 외곽부 신개발지, 40대는 강남구·송파구등 아파트 밀집지역, 50대는 도심 일부와 마포구등 구시가지에 거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따라서 소형승용차를 팔거나 놀이방등 유아 관련 일을 시작하려면 강남보다 30대가 집중된 외곽지역이 유리하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도시공동화 문제는 특히 심각했다. 70년을 기점으로 도시규모가 팽창하면서 종로·중구등 전통적 도심지역은 물론 용산·동작·영등포로 이어지는 시가지 상주인구도 빠르게 감소, 마치 고목의 나이테 중앙부가 썩어가는 듯한 ‘도넛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별 균등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아쉬운 점은 90년에 조사한 인구및 주택센서스 통계로 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 95년의 조사결과는 올 하반기에 나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는게 연구실측의 설명이다. 강병기교수는 “추후 달라진 통계에 따라 지도도 수정·보완할 계획”이라며 “행정당국의 도시계획, 기업들의 판매전략 수립, 그리고 일반인들의 서울살이 구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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