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두아들이 챙겨준 엄마 생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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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몇주전 일이다.쌀쌀한 날씨속에 눈발이 조금씩 날리던 새벽,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하려 신발을 신는 순간 대문짝만한 구두들이이리저리 흐트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간밤에 큰아들 친구들이 왔나 싶어 조심스레 방문을 연 나는 헝클어져 있는 방안을 보고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물론 처음엔 조용조용히 말했지만 잔소리가 많아질수록 언성도 높아졌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흥분하게 되었다.얼마나 고함을 질렀던지 이제까지 쌓였던 스트레스를 큰애한테 다 퍼부은 것 같았다.유난히도 눈이 큰 큰애는 눈만 끔벅이며“엄마, 알았어.엄마나가고 난뒤 내가 청소.설겆이.빨래까지 다 할테니까 오늘은 다른날보다 일찍 들어오세요”하는 것이었다. 조금은 계면쩍었지만 한번쯤은 혼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출근했다.하지만 하루종일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오늘은 일찍 집에들어가 오랜만에 김치볶음밥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잔뜩 밀려있는일감을 뒤로 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문은 잠겨 있었고 날씨탓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어둑어둑한 집안에 들어서고 보니 또 짜증이 났다.혼자서 푸념과 팔자타령을 중얼거리며 거실 형광등을 켤 때였다. “생일 축하합니다.생일 축하합니다.사랑하는 우리엄마,생일 축하합니다.”작은 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촛불이 가득 꽂혀 있는손바닥만한 케이크를,큰애는 분홍색으로 예쁘게 장식한 꽃을 들고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게 아닌가. 돈이 없어 장미꽃은 못사고 국화꽃을 대신 샀다는 큰애,올해는제일 작은걸 샀지만 내년에는 크고 멋진 생크림 케이크를 선물하겠다는 작은애.평소 설거지 한번 도와주지 않는 자식들이지만 엄마 생일날 화를 풀어주려한 애들이 얼마나 대견하 던지…. 제 생일조차 잊고 사는 엄마를 위해 피아노와 통기타연주를 들려주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해보았다.자식 생일은 잘 챙기면서 왜 정작 나의 생일은 잊어버리며 사는걸까. 김도숙〈부산해운대구반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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