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랑 실천할 힘 얻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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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4일 오전 10시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 동쪽 해안 시라호(白保) 지방. 사탕수수밭 위에 굴착기 세 대가 서 있었다. 사탕수수밭에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장비였다. 바닷가에서 100여m 떨어져 비죽이 솟은 산호초에 하얀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사탕수수밭에 있던 김다솜(17·대원외고 2년)양은 시라호 주민 와시오 마사히사(61)의 얘기에 집중했다. “공항을 건설할 때 바다로 유입되는 붉은 흙이 산호초를 죽인다. 흙의 작은 입자가 바다에 떠다니면서 산호초가 사는 데 필요한 햇빛을 막기 때문이다.” 와시오는 10년 전 이 지역으로 이주해 공항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대형수송기의 이착륙을 위한 공항 건설은 주민 반대로 지연되다 8월 공사를 시작했다.

설명을 듣던 김양은 “산호초를 지키려는 주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며 “굳이 산호초를 파괴하면서까지 공항을 건설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지혜(14·근명여중 2년)양은 “파도가 높아 산호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섬을 둘러싼 하얀 산호초 띠를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지혜·김다솜·오형지양(왼쪽에서 둘째부터). 왼쪽 끝은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 시라호 마을 주민.

김양은 지난달 20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2008 피스&그린보트’를 탔다. 올가을 중앙일보가 주최한 어린이·청소년 환경수기공모전에서 환경상과 함께 받은 부상이다. 여행에는 공모전에서 지구상을 받은 이양과 오형지(11·사당초등 5년)양도 동행했다.

이들은 21일 일본 고베에서 출항해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과 대만 지룽(基隆) 지방을 돌고 27일 부산에 입항했다. 지룽에서는 대만 대학생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김양은 “대만 정부가 한센병 환자 수용소인 낙생원(樂生院)을 없애려는 것을 반대하는 대만 학생의 얘기를 들었다”며 “수용소를 환자가 모인 곳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라고 보는 시각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양은 “우리나라가 50년 뒤에는 대만의 기후가 된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대만에서는 주위 환경이 많이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배 안에서는 일본인 참석자들과 환경과 평화를 위한 개인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기회도 가졌다. 일본 학생들과는 기후변화 방지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배멀미에 시달리면서도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김양은 “처음 탈 때는 설렜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는 환경 사랑을 실천할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양은 “배를 타고 가면서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본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오양은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일본인 언니·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멋진 공연을 지켜본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피스&그린보트는 ‘생활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테마로 한·일 젊은이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환경 문제 지역을 둘러보고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번 여행에는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쓰지 신이치 교수, 피스보트 요시오카 다쓰야 대표 등 한·일 양국에서 각각 3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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