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금융계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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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보사태로 금융계가 본 피해는 금액으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은행 이미지는 또다시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검찰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미 금융계 전체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이 묶이는 바람에 이자를못받게 된다는 점이다. 5조원에 달하는 금융기관의 대출금이 돌지 않고 한보에 잠기게되는데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에는 연간 6천억원 이상의 이자를 당장 못받게 된다. 벌써부터 관련은행의 부실화에 대비한 은행간 합병이나 예금보험공사의 역할이 거론될 정도다.은행도 문제지만 앞으로 차차 불거져 나올 제2금융권 소형 금융기관의 피해도 만만찮다. 특히 자기자본 규모가 작은 신용금고나 수신기능 없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 사용하는 파이낸스.할부금융등은 조금만 돈이 돌지 않아도 도산위기에 몰릴 정도다.한보에 물린 돈의 규모 자체(1조8천5백억원)는 은행권(3조4천8백억 원)에 비해작아 눈에 띄지 않지만 피해는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금융기관이 부실화돼도 예금보험공사(은행)나 신용관리기금(제2금융권)이 나서서 예금자 보호에 나서기는 한다.그러나.주머닛돈이 쌈짓돈'식으로 결국은 다수 예금자가 조금씩 피해를 나눠 떠안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휘청거리면 금융시장의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직접 피해를 준다.금융기관의 자금사정이 압박받으면 창구가 얼어붙기 때문이다.결국 무차별적인 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설 것이고,이렇게 될 경우 없애겠다는 금융기관 자율화정책 은 또다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혈관의 한쪽이 막히게 되면 다른 부분에 순환장애가 일어나듯 다른 금융소비자들(기업.개인)이 필요한 돈을 충분히 사용할 수없게 된다는 얘기다. 1월 부도율은 96년말의 0.16%에서 0.2%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5백만원짜리 가계대출을 못받아 발을 동동 구르는 서민들이나 몇천만원을 못막아 부도를 내는 중소기업사장의 고민은 더욱 커지게 된다. 또 금융자원의 분배차원에서도 이미 큰 손실이 저질러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3조원이면 충분했을 투자에 은행들이 5조원이나 쏟아부었다는 분석이 사실이라면 2조원은 국가 전체적으로 낭비한 셈이다.2조원이라면 지난해 정부가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한 예산규모와 맞먹는 돈이다. 국제적으로도 국내은행의 신용이 내려가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졌다.도쿄(東京)금융시장에서는 지난달 31일 한국계 은행에 대한대출금리에 얹어받는.코리아 프리미엄'이 갑자기 최고 0.2%로높아졌다. 한국계 은행의 자금난이 심각해지자 3일에는 중앙은행인 일은(日銀)이 단자사들에 전화를 걸어“한국계 은행에 여신지원을 원활하게 해주라”고 창구지도에 나서기도 했다.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일본의 중앙은행까지 나서 불끄기에 나설 정도가 된 것이다. 결국 한보사태로 인해 단기적으로 빚어지는 금융경색 현상은 물론이고 국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신인도 추락이 회복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될 것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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