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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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년전 일본에서도 리크루트 스캔들이란 전후 최대의 정치자금스캔들이 있었다.리크루트사가 자사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총리,미야자와(宮澤)대장상등 수십명의 정치인에게 공개 직전의 리크루트 주식을 준 것이 알려져 총선에서 자민당 정권의 참패라는 결과를 초래했다.이 일로 다케시타 총리는지지율이 한자릿수로 떨어져 결국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 한 일본인으로부터 이 말을 들으면서.한보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끓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보사건이 터진지 열흘이 넘지만 정치는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야당은 젊은 부통령,민주계 실세,청와대 개입설운운 하면서 “권력의 핵심세력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해방 이후 최대규모의 권력형 비리라고 여권을 몰아 세웠다.여당도 질세라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모아“야당의 모 인사가 한보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며 맞불을 놓는 추태(醜態)를 보였다.즉각적인 국회 소집을 요구했던 여야는 열흘이 넘도록 개원협상조차 벌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속을 태우는 것은 국민이다.국민에겐 5조원이 넘는천문학적 금액을 은행들이 순순히 내준 것도,TV화면에 비친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의 큰소리치는 모습도,재계 30위 밖에 있던한보가 불과 수년만에 14위로 급부상한 경위도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최근 한 여론조사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지지도가 한자릿수로 떨어졌다고 전한다.취임당시 90%를 넘던 지지율이 불과 4년여만에 한자릿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금융실명제.역사 바로세우기.군(軍)개혁등 역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개혁을 수행해온 金대통령이 군사정권.독재정권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낙제점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통령이 나설 차례다..한보게이트'의 잉태와 발생에 대한 책임이 현정권에 있는 만큼 한보사건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풀어줄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이미 이번 사건을 “부정부패의 표본”이라고 규정,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바 있다.더욱이 취임 이후“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공언해온 만큼 떳떳하게 의혹을 파헤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렇게 하는 것만이 등돌린 민심(民心)을 수습하는 길일 것이다. 엄청난 비리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국민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것이 급선무인 이때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구가 있다..백성은 지극히 어리석으나,가위 속일 수 없는 것이 백성이다(民至愚 可欺者民也)'-.논어(論語)'-.이정민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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