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러시아式 민주주의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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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보는 서방과 러시아인의 시각엔 커다란 간격이 있다.

서방은 늘 러시아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독재적'이라 비난하고 야당 정치인.기업인 탄압, 언론 통제 등을 끊임없이 비판의 도마에 올린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생각은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나름대로 근거 있는 서방의 비판과 우려가 러시아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워싱턴 타임스 20일자에 실린 모스크바 정치 분석가 피터 라벨의 글이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고문 요지는 "러시아인들은 서방의 정치 개념을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그게 러시아 정치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서방에선 '악(惡)의 친구'쯤으로 취급되는 '권위주의'가 러시아에선 '법과 질서 확립을 위한 정부의 통치 방식'으로 이해된다. 동시에 '법'보다 '질서'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시스템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게 러시아인의 생각이다. 검열정책까지도 '언론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권리와 책임'이라고 여기며, 언론 부패와 선정적 보도를 막고 국가적 가치를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받아들인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러시아를 현대화하고 소련을 강국으로 만든 사회.경제 시스템'이라며 향수를 느끼곤 한다.

반면 서구에서 선(善)으로 여겨지는 민주.자유.자본주의 같은 단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민주주의를 '소련 붕괴 이후 혼란을 야기하고 소수의 치부를 합법화하는 데 이용된 정치사상'이라고 본다. 자유주의엔 '100명도 안 되는 기업인들이 국가경제를 독식하고 통제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사상'이란 비판이 따른다.

심지어 자본주의도 '소수의 이익만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 공익에 대한 무관심 등과 같은 부정적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혼란'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권위주의자 푸틴'이 낫다고 손뼉치는 '이상한 나라' 러시아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흥미있는 설명인 게 분명하다.

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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