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눈앞에 현실화된 엄혹한 경제 한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실물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더 깊고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당초 3.5%로 잡았던 내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 달 만에 2%로 낮춘 데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5%로 전망했던 내년 성장률을 2.7%로 내렸다. 한국은행도 내년 성장률을 2%대로 낮춰 잡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내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의 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경기가 그만큼 빠르고 급격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경제규모가 쪼그라든다는 뜻이다. 경제활동의 결과인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전기보다 줄어들면 소득이 줄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자칫하면 소득·고용의 감소-소비·투자의 감소-생산 축소-소득·고용 감소라는 축소지향의 악순환이 빚어질 수도 있다.

경제 현장에선 벌써 이 같은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한은이 발표한 11월 제조업의 업황 경기실사지수(BSI)는 54로 전달(67)보다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3분기(47)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내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은 더 심각하다. 상의의 내년 1분기 BSI는 55로 전 분기(79)보다 무려 24포인트나 급락했다. 98년 3분기의 BSI 6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싸늘하다는 얘기다.

이제 다가오는 엄혹한 경기침체의 한파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기업·가계·정부 등 경제주체 모두가 비상한 각오로 견디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침체의 골을 가급적 얕게 하고 침체의 기간을 짧게 넘겨야 한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여전히 4%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론만으론 결코 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급박한 경제상황의 악화에 대처능력만 떨어진다. 지금은 냉정한 현실인식과 함께 최악의 사태까지도 대비하는 각오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