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고위 관계자 “내년 3월까지 남북관계 경색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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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이 기로에 놓였다. 24일 북한이 개성관광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다. 정치권에서는 “비핵·개방 3000 구상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대북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나온 목소리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에서 진전을 보이면 남한이 북한의 경제상황 개선을 적극 지원한다는 정책이다. 지원을 통한 목표는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리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경선 때부터 이 구상을 통해 집권 후 자신의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 구상은 발표 때부터 “상호주의를 강조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비핵이라는 전제를 설정, 정부가 남북관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강경 행보가 끊이지 않자 이 구상이 남북관계 경색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25일 “비핵·개방 3000 구상이라는 게 결국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손 놓고 있겠다는 뜻”이라며 “북한이 직접 미국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는 마당에 이명박 정부도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날 정세균 대표도 “이 대통령이 진짜 실용주의자라면 남북의 최근 적대관계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개방이라는 전제 조건을 유연하게 바꾸라는 주문이다.

물론 여당 지도부는 발끈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비핵·개방 3000의 대북정책 기조가 현재는 옳은 방향이고 대도(大道)”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다른 견해가 많다. 국회 외교통일통상위 소속 남경필 의원은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따르면 ‘너 먼저 변해라. 난 기다리겠다’는 게 우리 측 태도”라며 “이런 태도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상임위의 홍정욱 의원도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게 ‘실용 외교’였던 만큼 남북관계에서도 비핵·개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실용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할 수 없이 북한에 대한 무시정책으로 가고 있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볼 때 장기적으로는 견뎌내기 힘들다”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늘 남한이 먼저 손을 들고 만다”고 분석했다.

◆긴급 당정회의 개최=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서 비공개로 긴급 당정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 대북 정책의 기류를 살필 것이다. 내년 3월까지는 남북관계 경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을 완전 중단하고 남북관계를 전면 차단할 가능성이 있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 같은 단계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대북 민간단체들은 이날 “최근 대북 전단지 살포를 3개월간 중단하기로 했으나 북한이 개성관광 중단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고 전단지를 계속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궁욱·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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