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한보규명' 흥분 삭이고 냉철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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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른바 한보(韓寶)문제는 숨겨질 수도,숨을 수도 없는 성질의것이라고 나는 보고있다.만약 그 진상(眞相)이 만천하에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언론의 명예에 걸리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물론 이런 일이란 응당 관계당국 ,특히 사직당국의 책무와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언론의 몫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길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주 중앙일보가 집중적으로 보도한.한보사태'관련기사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려는 노력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큰 사건이나 문제가 터졌을 때는 으레 흥분의 흔적이 기사나 지면에 나타나게 마련인 모양이다.물론 기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흥분이 기사에 표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런 흥분이 냉정으로대체돼 차분하게 진상을 파헤침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을 완벽하게 풀어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지적한다면 지난주의 중앙일보는 한보그룹 정보근(鄭譜根)회장의 사진을 같은 날짜 신문의 각기 다른 지면에 연거푸 게재한 바 있다.그런데 이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鄭회장의 기자회견과 제일은행 방문등 일련의 움직임을 커버한 것이 그렇게 되었다고도 보인다.하지만 그런 기사는 여기저기로 분산할 것이 아니라 한데 모아 지면을 꾸미는 것이 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말한다면 지금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것은 鄭회장이 아니라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의.모습'이다.그런데鄭총회장의 움직임을 포착한 사진은 어떤 신문에서도 보이지 않고있다.그의.모습'과 그의.입'은 당장이라도 지면에 나타나야 하고 또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신문의 자세여야 한다고 나는 믿고있다. 또 하나 지적돼야 할 것은 관계당국의 鄭총회장을 비롯한7명의 출국금지조치 기사와 관련된 문제점이다.당국이 발표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앙일보를 비롯한 모든 신문이 출국금지조치된 사람의 명단을 4명(정태수.정보근.정한수부회장 .이신영한보금융사장)만 밝히고 나머지 3명은 밝히지 않고 있다.만약 당국이 4명의 이름만 발표하고 나머지 3명의 이름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땅히 신문이 밝혔어야 할 일이고,그렇지 않을경우에는 그런대로 독자가 납득할 수 있 게 기사처리됐어야만 했다.물론 명단발표의 기사화는 그것이 인권 또는 명예훼손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는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한보사건의 경우 당국의 출국금지조치자명단의 기사화가 문제될 소지는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지난주 중앙일보는 탤런트 박규채(朴圭彩)씨의 영화진흥공사 사장임명소식을 가볍게 가십거리로 처리해버리고 말았다.이러한 뉴스처리는 여론을 주도해야 하는 신문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라고지적돼야 할 것같다. 잘못된 인사이기 때문에 영화진흥공사 내부에서 반발이 있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영화관련단체의 반대성명과 야당의 비판등을 마땅히 기사화해 제대로 보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사실 이런 잘못된 인사는 비판에만 그쳐서도 안되고,시정되는 방 향으로까지 몰고가는게 언론의 정도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같다. 예부터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은 정치의 대도(大道)가 인사의 대도와 직결되고 있음을 망각한데서 비롯됐다고 일컬어져 왔다.그런데 인사의 대도는.붕망(朋亡)'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붕망'에서의 붕(朋)은 붕우(朋友)니 붕 당(朋黨)이니 하는 것을 이르는 글자다.다시말해.패거리'를 뜻하는 글자다.따라서 붕망이란.패거리를 망하게 하라'또는.패거리를 잊으라'는 뜻이다.그렇게 하지 않고는 인사의 대도를 갈 수 없고,인사가 대도를 가지 않는한 정치의 대도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된다. ***허술한 .뒷북' 보도 지난주 중앙일보의 보도 가운데 특히 문제점으로 지적돼야 할 기사는.세계 최초 목판인쇄술 발명놓고 한.중 자존심 싸움'이라는 제목의 것이다.이 기사는 지난 10일 중국의 한 신문이 보도한 것을 국내의 다른 신문이그 다음날 보도한 것인데,그보다 거의 10일이나 늦게 보도하면서도 내용의 충실성이 매우 결여된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지난 66년 경주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라는점에서 목판인쇄술의 최초 발명국이 한국이냐,중국이냐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관심거리임에 틀림없다 .뒤늦게나마 이것을 기사화한 것은 안한 것보다 잘한 일이라고 하겠는데,기왕하려면 뒤늦게 하는 것이니만큼 중국측의 논문내용과 움직임도 보다 구체적으로 취재하고,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관련 논문이나 관련전문가들의 취재도 완벽하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중국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성전(聖戰)'이란 말까지 사용하고 있다지 않는가. (본사 고문) 이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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