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연예가] 연예인도 가끔 사표 쓰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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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치사해서 그만둔다, 그만둬~." 직장인이라면 한 번은 쓰고싶은 충동, 사표. 모 기관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표 이유 1위는 회사가 비전 없다 느낄 때, 2위는 늘 적어서 탈인 급여문제, 그 밖에는 직장 상사 혹은 동료와의 갈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연예인들도 사표 쓰고 싶을 때가 있을까?

가수로 데뷔해 개그맨으로 전업, 방송인으로 빛을 발한 꽉 찬 10년 차 지석진에게 물었다. 연예인이 사표라?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짓는 그였지만 고개 끄덕이며 눈을 반짝인다.

"아, 저도 딱 한번 그런 비슷한 충동 느낀 적 있었어요. 오래 전이었죠. 당시 '메뚜기' 유재석과 개그계의 쌍두마차로 달리던 시절이었는데 제게 광고 제의가 들어왔어요. 어찌나 신이 나던지. 당시 한창 연예인 광고모델료가 드디어 억대를 넘어섰다고 신문기사화되던 때였거든요. 잔뜩 기대하고 물었더니 1년 단발에 무려 다섯장? 알고 보니 5억원은 고사하고 5000만원도 아니라 50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50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광고모델료로 봤을 때는 신인도 안 되는 턱없는 금액이었죠."

스스로의 몸값에 대해 심한 회의와 좌절을 느낀 그는 천직이라 믿고있던 연예인을 그만두고 전직(轉職)할 생각도 잠깐 했단다. 그때는 정말 누가 받아준다면 당장 사표 쓰고 싶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연예인 이외에 다른 직업이라곤 아르바이트도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이 남자, 탤런트 정태우도 불끈불끈 사표 쓰고픈 충동을 느꼈을까? 사표라는 단어조차 낯설어 하는 그였지만 알고 보면 방송 경력 18년차 베테랑. 그는 일 때문에 '화'가 나서라기보다 자신감이 결여된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애인보다 사랑하는 연기를 그만두고픈 위기에 봉착했다는데….

"사극을 할 때는 세트 촬영이 많잖아요. 그럴 땐 대사를 한번에 다 소화해야 하거든요. '왕건'(KBS)시절 대본 일곱장이 한 신이었는데 그 중에서 제 대사만 무려 여섯장이었어요. 대본을 받고 난생 처음 걱정돼 잠을 다 못 잤다니까요. 심지어 녹화날이 안 오길 기도했죠."

방송인 중에서 월급 받는 직장인인, 아나운서! 과연 신영일 아나운서도 가슴팍에서 사표 꺼내고 싶은 충동이 있었을까?

"그럼요.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사람들은 아나운서가 프로그램 많이 하면 돈 많이 버는 줄 아는데 사실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해도 연예인 200만원 받을 때 저희는 달랑 2만원 받거든요. 라디오는 8000원. 특히, 통장 정리하면 총액은 얼마 안 되는데 여러 페이지일 때 문득 사표 내고 싶죠. 하지만 이런 생각은 순간이고, 일이 있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훨씬 오래가니까…."

사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세 남자의 공통된 비결은 바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표와 복권의 공통점? 인생의 반전이 될지, 이브의 사과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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