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프리터 천국' 일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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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프리터(freeter)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회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꿈을 좇는 사람'들을 지칭했기 때문. 그러나 10년 장기 불황에다 고용 시장이 유례없이 움츠러들면서 프리터들의 위상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오죽하면 '발로 차이는 게 프리터들'이라는 소리가 나왔을까. 실제로 일본 젊은이 가운데 5명 중 1명은 프리터다. 절대 수가 늘면서 새로운 직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요즘에 가장 인기를 끄는 게 바로 '여자 행세'아르바이트다. 최근 일본에 '만남 사이트'가 급속히 늘면서 사이트를 찾는 남성의 상대 역할을 해주는 일종의 '시간제 사이버 연인'이다. 여성 회원이 적은 관계로 남성 회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성 대역이 필요해 생겨난 파트타임 일거리다.

24세인 요시오카 히로시도 그중 한명. 그는 최근 회원수 8000명인 '사쿠라'란 사이트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근무시간은 오후 11시에서 다음날 오전 9시까지다. 수당은 시간당 1500엔으로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많은 편. 게다가 정식 사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여서 여유있게 맥주 한잔 마셔가면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시오카는 '욕망'으로 가득 찬 남성들의 접근에 '아, 그래요''멋지군요'등 아주 간단한 글로 응대하는 게 전부다.

이에 못지 않게 인기를 끄는 아르바이트는 '길거리 스카우터'. TV나 잡지에 출연해 줄 사람을 찾거나 심지어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 일할 종업원을 구해오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그래도 요령이 필요하단다. '어떤 사람에게 접근해야 성공 확률이 높고 어떤 이는 거절할 것'인지 파악하는 데 한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프리터 천국'이란 말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지난 4월 일하면서 배우는 '일본판 듀얼 시스템'을 시작했다. 독일의 직업학교 학생이 기업실습을 하는 듀얼 시스템을 본 뜬 것. 구체적으로는 35세 미만의 구직자를 공공직업훈련시설이나 전수학교 등의 훈련생으로 받아 교육시키는 프로젝트다.

이와 함께 교육기관은 훈련생을 받아 줄 기업을 개척해 실습을 실시한다. 주 2일 배우고 3일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올해에만 약 75억엔(약 75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인데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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