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업 대책에 만전을 기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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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용 한파가 엄습해 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업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가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임금을 낮추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해 함께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분담에도 한계는 있다. 불가피한 구조조정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자명하다. 든든한 실업 대책을 만들어 사회·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실업 대책은 ▶실직자의 생계를 직접 지원하면서 ▶효율적인 고용정보 및 취업교육 시스템을 구축, 재취업을 유도하고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재설계하는 다중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지난 3일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골자로 하는 수정예산안을 제시했지만 규모와 내용 면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 총 14조원의 지원예산 중 실업수당 등 직접적인 실업 대책 증액은 6088억원에 불과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난이 예상되는데도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은 고작 470억원 늘리는 데 그쳤다. 청소년 실업 대책도 5년 전 실패했던 사업장 인턴제가 다시 등장하는 등 그동안 발표됐던 정책의 재탕, 삼탕이 수두룩하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불황에 대비하는 비상 대책이라고 하기엔 안이하고 추상적이다.

지금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실업수당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덴마크 등 유럽 국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실직자들이 사회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을 만큼은 혜택을 늘려야 한다. 최장 240일인 수당 지급 기간을 1년 정도로 늘리고, 하루 최고 4만원으로 제한된 수당액도 대폭 올려야 위기 처방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비정규직 실업자에 대한 생계 지원책도 절실하다. 계약 및 파견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550만 명에 이르는 이들 비정규직은 사실상 구조조정의 0순위라는 점에서 오히려 정규직보다 실업 대책이 절실하다. 경기 회복까지 한시적이라도 고용보험 가입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생계 지원을 받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직자들을 감싸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구인·구직 정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괜찮은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재취업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직접고용 효과가 큰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도시 건설 등 토건사업보다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예산을 투여해 장기적인 성장동력과 연동시켜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불요불급한 세출을 과감히 줄여 실업대책에 돌려야 한다. 그래도 부족한 재원은 고용보험료율을 올려 충당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전 세계가 고용 한파 극복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1일 실업수당 연장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도 대량실업 방지에 국가 경쟁력을 집결하고 있다. 소비가 성장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실업은 체제 위기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고용 한파를 슬기롭게 극복할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