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율화, 현 정부 들어 달라진 게 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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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경북 포항시 한동대에서 열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세미나장. 올 8월부터 이날 행사를 준비한 홍승용 인하대 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사립대 학생과 학부모를 합치면 1000만 명이나 되고 대학의 80% 이상이 사립대인데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느냐”며 “더 이상 목소리를 낮추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95명 총장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토론회에서 총장들은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사학법 폐지와 사립대 재정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학 자율화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일부 총장은 “이번 정부에서는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도 했다.

◆“통제 중심 법 폐지를”=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대학 발목을 잡는 규제 사례를 털어놨다. 서 총장은 “학부 정원을 대학원으로 넘기려 해도 간단하게 되지 않는다”며 “같은 수도권이지만 서울캠퍼스와 수원 자연과학캠퍼스 간 학생 정원 이동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4학기제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쉽지 않다.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년 교수를 채용하려 했다가 (정부에) 혼만 나고 포기했다”고 밝혔다. 다른 총장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POSTECH(옛 포항공대) 백성기 총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겪은 일을 소개했다. POSTECH은 백 총장이 취임하기 전 국회를 통과한 사학법에 따라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했다. 대학평의원회는 사학법에 따라 교육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다. 그는 “우리 학교는 사학법 규정대로 곧이곧대로 운영해봤다”며 “그 결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평의회가 심의기관이다 보니 평의회를 구성하는 학생과 직원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학교 발전에 책임을 지는 이사회에 안건이 올라간다. 백 총장은 “이런 법은 우리나라밖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이기수 총장은 “정부의 재정 지원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학법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론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대학의 책임도 중요하다”=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부겸 국회 교육과학위원회 위원장(민주당)은 “수능 성적대로 줄 세워 뽑아 쓰는 입시는 편할 것”이라며 쓴소리를 했다. 이전 정부의 다양한 성과에 대해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렸다고도 했다. 올 대입에서 상당수 사립대가 수능 위주로 학생을 선발키로 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세종대 양승규 총장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사립대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홍익대 입시 부정 사건과 고려대 수시2-2 혼선 등 대입 자율화를 둘러싼 논란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세미나에선 3불(본고사·기여입학제·본고사 금지)을 점진적으로 폐지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입학 제도 분야 발제를 한 성태제 이화여대 교수는 “수능 등급제는 고교 교육과정의 특성과 우수성을 따져 내신을 반영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포항=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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