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실씨가족탈출과정><인터뷰>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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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0월 북한을 탈출,한국의 품에 안긴 김경호(金慶鎬)씨 일가족등 16명은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가족별로 기자회견을 갖고 탈출과정과 북한실상등을 소상히 털어놨다.다음은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세살배기 손녀등 일가족 15명 을 이끌며 두만강을 넘고 중국 대륙을 종단한 金씨 부인 최현실씨를 비롯한가족들의 증언이다.
◇탈출과정 -탈북을 처음 결심한 때는.
“알려진 것과 달리 지난해 7월 옌볜(延邊)에서 어머니를 만나기전 탈북을 이미 결심하고 아이들에게도 뜻을 내비쳤다.” -탈북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설득은 문제없이 이뤄졌는가.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간 지난해 9월5일 아들과 며느리,셋째딸과 사위에게 탈북계획을 분명히 밝혔다.아이들은 아무말 없이 응했다.걱정했던 나머지 사위 둘도 망설임 없이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어떻게 일가족 모두를 데려올 계획을 세웠나.
“가족들과 헤어져 지내온 나의 지난날이 너무도 가슴 아파 아이들에게만은 이런 고통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결심했다.” -가족들간의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나.
“아무리 아들이 부모를 고발하는 북한사회라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최근에는 고발당한 사람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다 보니가족간에는 오히려 감싸주는 분위기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원산에 두고온 맏딸의 소식을 들었나.
“맏딸 명희 가족은 가난 때문에 집도 다 팔아먹고 떠돌이생활을 하고 있었다.떨어져 살아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못했는데….안좋은 일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다(가족들은 건강이 안좋은 아버지김경호씨에게는 맏딸 명희씨 가족 소식을 아직 알 리지 않고 있다).” -김일성(金日成) 사망때 웃음소리가 들려 고초를 겪었다는데. “김일성 사망 직전인 94년 6월부터 내가 몸이 아팠는데 셋째 사위가 나를 안아들고서는 건강하시라고 했다.이를 본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여자들이 이를 밀고했다.” ◇북한 실상 -회령지역의 식량사정은 어떤가.
“인구 15만명의 회령시 인구중 30%는 식량걱정을 하지않을정도고 40%는 강냉이를 먹는다.그러나 나머지는 풀죽이나마 먹어야 할 정도로 식량난에 시달린다.지난해 1월부터 배급이 끊겼고 매일 서는 농민시장에 빵이나 꽈배기등을 만들 어 내다 팔거나 해변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구한다.” -식량난으로 유랑하는 주민들까지 있다는데.
“회령시 강가에도 다른 고장의 집을 팔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여섯집이 있었다.이들은 비닐천막을 짓고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산다.” -회령지역은 김정일(金正日)의 생모 김정숙(金正淑)의고향이라 식량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 아닌가.
“김정숙의 생일이나 사망일에는 중앙간부들이 행사를 위해 내려온다.이때는 강냉이와 사탕 5백g이 특별배급으로 나온다.그외에는 별다른 혜택이 없다.” -미국 가족이 보내준 달러는 어디서어떻게 환전해 사용했나.
“95년부터 3개월이나 반년마다 5백달러 정도씩 송금돼 왔다.주로 호텔서 바꿨는데 출처만 명확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바꿀 수 있었다.” -환전한 달러는 어떻게 썼나.
“맏딸 가족까지 모두 21명인데 똑같이 나눠썼다.1백달러면 북한돈 1만8천원에서 2만원이다.쌀 1㎏에 80원 정도니 온가족이 풍족하게 쓸 수 있었다.” -북한에서 남한 물건을 보거나써본적이 있는가.
“미국에서 보내온 아버님의 약중에 남한에서 만든 영양제.비나폴로'가 있었고 서울이라는 표시도 선명했다.북한당국의 검열을 거친 약중에 남한 물건이 있어 놀랍게 생각했다.93년 회령에서는 밀수용으로 수입한 일본 중고차 속에 한국승용차 가 섞여있었다.” -한국이 북한에 쌀을 지원한 사실을 알고 있나.
(김명숙)“미국에서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남한에서 쌀을 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미국이 쌀을 지원하는 것을 남한이 방해했다고만 했다.여기와서 남한의 쌀 지원 사실을 알았다.” -북한에서 지낼 때 무엇을 먹었나.
(박수철)“지난해 9월말 남한으로 가는 작전을 할 때부터 비교적 남보다 좋은 밥을 먹었다.남한으로 갈 때까지 육체적인 고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이 때부터는 장마당(암시장)에나가 돼지고기.쌀.옥수수를 사와 넉넉히 지낼 수 있었다.그러나그전까지는 토끼풀.민들레등으로 쑨 풀죽과 무.배추가 고작이었다.” -쌀과 고기가 암시장에 나오나.
(김명숙)“장마당은 매일 선다.북한당국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식량은 평안도.황해도에서도 올라오지만 중국 상인들도 많이 가지고 온다.” -지난해 북한의 농사 작황은 어떠했나. (김성철)“비료.농약이 없어 지난해도 피해가 컸다.식량사정이 나쁜 통에 덜 익은 옥수수를 따먹는 경우도 많았다.95년도의 경우는 1정보에서 쌀이 2백80~3백㎏밖에 생산되지 않았다.” -골동품이 상당수 중국으로 밀수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김명숙)“사실이다.황해도나 개성에 있는 주민들이 도자기를 들고와 옌볜 상인들한테 넘기고 있다.그림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이밖에도 금.은.흰가루(아편)도 밀수되는 것을봤다.” -김정일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은 어느 정도인가.
(최영호)“김일성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전반적으로 숭배감을 갖고 있다.그러나 경제가 나빠지면서 김정일이 정치를 못해 그렇다는 불만이 늘고 있다.게다가 김정일은 김일성처럼 조국의 광복을위해 일도 하지 않았다.” -북한에 아직도 5호담당제가 있는가. (김금철)“5호담당제는 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위한 것이다.지금은 농촌에만 부락단위로 있고 도시에는 없다.도시의 경우 인민반이 한다.담당자는 학교 교원이 맡고 있다.” -김일성 별장인 창성특각에서 11년간근무한 적이 있는데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자주 들렀는지.
(박수철)“김일성은 생존 당시 1년에 40일가량을 압록강 수풍호를 끼고 있는 창성특각에서 보냈다.김정일은 두번 정도 김일성을 수행해 들렀다.김일성은 처 김성애를 데리고 올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적은 편이었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는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김명숙)“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확실히 모르겠다.주민들은 미국에 대해 북한이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막연히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북한군의 정신상태는 어떤가.
(최영호)“싸워서 이긴다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다.그러나 90년대부터는 보급이 나빠 군인들이 허약해지면서 전쟁을 제대로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북한군에 의한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영호)“없다.단지 그 기간에 북한이 미국 잠수함을 잡아 식량 10만을 받고 돌려보냈다는 얘기만 있었다.” -지난 86년부터 95년까지 서해함대사령부 12전대에서 근무했는데 군의 전쟁준비 태세는 어떠한가.
(김일범)“양식.피복.연료는 1주일분을 비축해두고 있다.군당국은 1주일만 버티면 전시보급체제가 완벽하게 된다고 말한다.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부대의 유류창고장은 언제나 충분한 연료를 비축해 두고 있다.” -북한체제에 대한 전망은.
(김일범)“북한은 차단된 사회다.남한이나 외국실정을 잘 모른다.주민들의 사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몸에 박힌 인이쉽게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김정일이 살아 있는한 쉽게 무너지지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영환.이영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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