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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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겨드랑이에 털이 났는데 거기에는 털이 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돼.옥정이는 정신 감정보다는 몸 감정부터 해야 돼.” 길세가 조금 나 있는 옥정의 겨드랑이 털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달이 보던 책을 덮고는 단원들과 옥정을 이끌고 다시 다리를건너 폐허 마을로 돌아왔다.물론 다리 밑에 숨겨둔 쇠파이프와 야구 방망이 챙기는 일을 잊지는 않았다.
“나,봤다.계집애들.” 다리를 다 건너왔을 때 옥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계집애들을 보다니? 저쪽 동네야 계집애들이 수두룩하지만,여기는 없잖아.” “여기,여기.” 옥정이 폐허 마을을 손으로 가리키며 언성을 좀 높였다.
“옥정이 어디서 계집애들을 본 모양인데? 어디야,어디?” 니키 마우마우단원들이 바짝 긴장하였다.옥정이 용태의 다급한 질문에 마을 한구석 전봇대가 서 있는 근방을 가리켰다.거기에는 단독주택을 개조하여 소위 방석집을 하던 건물들이 주로 모여 있었다.지금은 방석 한 장 없이 텅텅 비어 있는 집들이었다.
며칠 전에는 그 건물들 중 한 집 구석방에서 쓰다 버린 콘돔세개를 주워 단원들이 킬킬거리며 가지고 논 적이 있기도 하였다. “지구가 제3차대전으로 멸망하고 우주인이 지구로 와서 유적을 발굴하다가 이 콘돔들을 발견하면 무엇에 쓰이던 물건이라고 생각할까?” 먼지 묻은 콘돔을 툴툴 털면서 도철이 수수께끼를 내듯 단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우주인들은 말이야,자기들 신체구조를 염두에 두고 추측할테니까 말이야.발싸개,그러니까 양말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지.
길쭉한 발가락들을 모아서 콘돔에다 억지로 끼우고 펭귄처럼 뒤뚱뒤뚱 지구를 걸어다니는 우주인들을 상상해 봐.웃긴 다.웃겨.그치?” 우풍이 자기 상상에 취하여 머리를 젖히고 허리를 흔들며웃어대자,용태가 축 처져 있는 콘돔 하나를 벌어질대로 벌어진 우풍의 입에다 슬쩍 떨어뜨렸다.
“쾌액,.” 우풍이 콘돔을 토해내며 기침을 해대고 단원들은,까르르 깔깔,웃음보를 터뜨렸었다.
“저기는 아무도 없었잖아.하지만 한번 더 가보자.이틀 사이에옥정이 말마따나 계집애들이 떼로 몰려왔는지도 모르지.” 기달이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섰다.메마른 늦여름 날씨에 흙먼지들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글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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