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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경제팀 흔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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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과거 통계를 보면 대통령이 취임하고서 2년째에는 내수, 그 중에서도 특히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의 2차연도에 해당하는 1989년, 94년 및 99년에 민간소비는 각각 10.1%, 8.2%, 11%씩 증가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으레 개혁과 사정 얘기가 나오게 마련이어서 첫해에는 기업이 몸을 사리고 가계 또한 위축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감안해 개혁의 강도를 조절하게 되고 민간부문도 불안감에서 벗어남으로써 내수경기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온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무현 정부의 2년째인 올해에도 그런 현상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기대해볼 만했다. 사실 현정부의 처음 1년간 경제운용 실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난 2월 개각이 있었고 이헌재 부총리가 이끄는 새 경제팀이 경제를 살린다는 대의 아래 일관성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대내외적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경제회복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났다. 증시도 4월까지는 활황을 보이면서 경제호전을 예고해 왔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면서 해외로부터 3대 역풍이 닥쳐왔다. 경기과열을 우려한 중국의 긴축 조치, 미국의 금리인상 조짐, 그리고 원유가격 급등이라는 풍랑이 한국 경제라는 배를 몰아치고 있다. 주식값은 곤두박질쳤고 환율과 물가는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0년대 후반 소위 3저 현상이라 해서 해외로부터의 3대 호재가 한국 경제에 엄청난 호황을 안겨 주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지금 경제팀으로서는 운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악천후에서 배를 제대로 몰아가야 할 선장실의 경제팀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팀 흔들기는 지난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열린우리당에서 시작되었다. 당권경쟁 때부터 개혁이냐 실용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데다 승리한 사람들은 개혁 우선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화답하는 듯한 盧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경제팀을 요동치게 할 수 있다. 지난주 국민에 대한 담화문에서 대통령은 경제살리기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경제위기의 확대 주장에 대해 경고했다. 성장보다는 개혁을 앞세울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지난해 경제가 어려웠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기업개혁.노사관계.신용불안 등의 주요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장관들의 말이나 행동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올해 2월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경제회생을 위해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盧대통령부터도 경제에 관해서는 말을 삼가면서 경제팀에 힘을 실어주었다. 경제장관들도 부총리와 다소 이견이 있더라도 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 정치자금 관련 비리를 조사하는 검찰까지도 경제의 어려움을 의식해 기업인에 대한 처벌수위를 조절해 왔다.

그런데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모처럼 형성되었던 분위기와 정책 일관성이 지금 무너지려 하는 것이다. 일단 경제팀에 맡긴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혁의 큰 그림 아래 경제회복을 추진하느라 여념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바꾸어서라도 일관성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 개혁이든 성장이든 방향만 분명히 정해진다면 기업이나 국민들은 그에 적응해 갈 수 있다. 가장 나쁜 것은 경제팀을 흔들어 정책을 갈팡질팡하게 해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이다.

노성태 논설위원